▲김해성 (사)지구촌사랑나눔 대표가 소년을 찾아가 사건 경위 등을 듣고 있다.
조호진
김상일(14)군은 2009년 7월 한국에 왔다. 중국 길림성에서 살던 조부모와 부모가 한국으로 이주했기 때문이다. 조부모는 한국 국적을 취득했고 아버지는 국적을 신청한 상태다. 중국에 남겨졌던 소년은 중학교 1학년 중퇴를 끝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한국에 왔지만 할 게 없었다.
한국말은 서투르고, 문화는 다르고, 친구도 없으니 단칸방에 갇혀 살다시피 했다. 소년처럼 외국(본국)에 살다가 입국한 경우를 '중도입국자'라고 한다. 수원에 살던 소년은 처지가 비슷한 조선족 형들을 만났다. 더듬더듬 답답한 한국말 대신 유창한 중국말로 중도입국자의 어려운 심정을 나누었다. 그런데 형들이 '상일아, 돈 벌러 공장에 가자!'고 해서 귀가 솔깃했다.
지난해 12월 12일 소년은 조선족 형들과 함께 한 파견업체의 소개로 경기도 평택시 안중에 위치한 자동차 부속품 제조업체 M공업사에서 한 달에 170만 원을 받기로 하고 첫날 일하게 됐다. 소년은 공부보다는 돈을 벌고 싶었다. 돈을 벌면 할아버지 할머니께 용돈도 드릴 수 있고, 멋진 스마트폰도 살 수 있고, 재밌는 퍼즐게임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 오후 3시경, 공장에 투입된 지 불과 3~4시간 만에 소년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공장 바닥에 나뒹굴었다. 육중한 프레스가 소년의 왼손을 덮친 것이다. 피투성이가 된 소년은 부장 차를 타고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봉합수술을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엄지손가락을 제외한 손가락 네 마디가 형체도 알 수 없게 으깨져서 어딘가로 사라진 것이다.
평택 B병원에 입원 중인 열네 살 산재환자, 소년의 침대 명찰에는 22세라고 적혀 있었다. 연소자 고용금지 위반을 감추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소년을 간병 중인 조부모는 답답한 심정이다. 파견업체와 공장은 산재사고 책임을 서로 떠넘기고 있고, 병원은 밀린 병원비를 정산하라고 독촉하고 있다. 사고 발생 한 달이 넘었지만 공장 사장은 병문안 한 번 오지 않았다.
M공업사 "일 시킨 적 없다"? - "안전교육도 없이 일 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