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에서 온 브라이언은 게임에 푹 빠졌다.
조호진
만득이는 일곱 살까지 중국에서 살았다. 만득이네 가족이 한국에 온 것은 다른 중국동포들처럼 '코리안드림' 때문이다. 중국에서 태어났으니 중국말을 잘하겠지 싶어서 "점심 먹었어요!"를 중국말로 어떻게 하냐고 물었더니 "중국말 다 까먹었어요. 생각나지 않아요." 그러는 것이다.
중국말뿐이 아니라 중국에서의 생각이 전혀 나지 않는단다. 언어는 그렇다 치고 자신이 자라고 놀았던 동네나 친구 이름까지도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기억이 나지 않는 걸까?
"엄마아빠가 많이 싸워서 그랬나 봐요!"남의 이야기 하듯이 단서를 '툭' 던진다. 엄마아빠의 싸움이 심각했나 보다. 동포들이 모여 사는 길림성과 연변의 가정들은 쑥대밭이 됐다. 연변자치주 조선족의 2009년 이혼 건수는 1800여 건으로, 한국에 돈 벌러 떠난 여성 10명 중에서 7명가량이 이혼한다는 것이다.
영화 <황해>에서 연변 택시운전수 구남(하정우)이 황해를 건너 한국에 가게 된 것은 한국에 간 아내의 소식이 6개월째 끊겼기 때문이다.
그것은 고통스러운 기억이다. 저주하고 욕하며 주먹질에다 살림까지 부수는 그 끔직한 싸움에서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울며불며 매달리는 것 뿐. 고통스럽거나 불안했던 기억을 까먹게(억압)하는 것을 '동기화된 망각'이라고 하는데 프로이트는 이를 '무의식적 현상'이라고 했다. 만득이는 엄마아빠의 끔찍한 싸움 때문에 중국에서의 기억을 무의식적으로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만득이는 부모님의 이혼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외면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이혼에 대한 원인 제공은 아빠가 했다. 전기공인 아빠가 한국에 와서 인터넷 도박에 빠졌는데, 뼈 빠지게 일해서 번 돈을 날린 것이다. 돈 벌어서 떵떵거리며 잘살려고 한국에 왔다가 자본주의가 파놓은 수렁에 빠지면서 가정까지 파괴된 것이다.
만득이 엄마는 몸이 약하다. 최근까진 일식집에서 일했는데 몸이 아파서 그만뒀다. 하지만 마냥 누워 있을 수 있는 처지가 아니기에 식당 일자리를 찾아 이를 악물고 나섰다. 한국은 말이 통하는 나라이긴 하지만 의지가지 할 데가 없으니 낮선 타국이나 마찬가지다. 타국에서 여자 혼자의 몸으로 아들 둘을 키우는 것은 힘든 일이다. 만득이 엄마는 식당 영업이 끝나는 밤 10시쯤에 집에 돌아오는데 만득이와 중학생 형은 저녁밥쯤은 알아서 챙겨먹는다.
열한 살 가장인 만득이 "그래도 행복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