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1일 금강산 면회소에서 열린 이산가족 작별상봉에서 남측 동생 이순자씨가 북측 오빠 리종렬(90)씨와의 헤어짐에 아쉬워하며 손을 흔들고 있다.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남소연
남북이산가족상봉이 성사되지 못하고 해를 넘겼다.
연평도 포격 사건이 있기 직전 열린 2010년 11월 상봉 이후 14개월째 제대로 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김정일 사망 당시 한국 정부가 일반 국민의 방북 조문을 금지하자 북한에서는 '(이명박 정부를) 영원히 상종 않을 것'이란 성명을 냈고, 이 대통령이 신년 국정연설에서 "도발 시 강력 대응"을 언급한 데 대해서도 '반역패당에게 그 어떤 출로도 없다'고 응답하는 등 남북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그러나 이미 대부분 70세를 넘긴 이산가족들에게 냉랭한 남북관계가 회복되기를 기다리기엔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2011년 11월 30일 기준 통일부에서 운영하고 있는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에 등록된 이산가족 찾기 신청자는 총 12만 8653명이다. 이중 4만 9395명이 사망했고 7만 9258명만이 생존해 있다. 우리 나이로 올해 79세인 상봉 대기자 허아무개씨는 지난해 상봉이 불발된 후 통일부로부터 상봉을 재개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내용의 전화를 받았다.
"이젠 신청자들이 많이들 돌아가셨다고 하더라고요. 지금 신청한 사람들이 모두 만나려면 수십 년은 걸린다고들 해서 희망을 거의 접었는데, 통일부에서 그 전화를 받고 그래도 기대감이 다시 생겼어요."허씨의 오빠는 허씨와 함께 신청대기자 명단에 올라있다 2010년 말 세상을 떠났다. 허씨가 1년에 한번 참석하는 동향 모임에는 고령으로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만 있을 뿐 아직 상봉자로 선정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중국의 브로커를 통해 북한에 있을지 모를 가족의 소식을 들어보려고 한 사람도 있었지만 실패했다. 허씨는 브로커가 사기를 치는 게 아니어도 만남이 성사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돈이 얼마나 더 들지 모르니 계속 시도할 수도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비공식 경로 통한 교류도 줄어 사실 허씨 남매는 그나마 운이 좋은 경우에 속한다. 허씨가 1994년 업무 차 중국을 방문했을 때 현지의 조선족에게 함경도의 옛 집 주소와 조카의 이름을 적은 쪽지를 건넸고, 이 쪽지가 몇 사람의 손을 거쳐 조카의 지인에게 전달되었던 것. 이 지인으로부터 처음 답장을 받은 1996년 이후 허씨와 조카는 중국을 통해 5~6차례 사진과 편지를 주고받았다.
허씨의 오빠는 북한 내에서 발각될 경우 아들이 곤경에 처할 것을 우려해 친필 편지 쓰기를 거부했다.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한번 국경을 넘을 때마다 위험 부담이 커, 허씨와 조카 가족은 이산가족상봉장에서 만나자는 말을 마지막으로 편지 왕래를 중단했다.
지난 한해 허씨처럼 중개인이나 단체를 통해 제3국에서 편지를 교환하거나 직접 만나는 비공식 교류 역시 크게 줄었다는 것이 통일부 이산가족과의 설명이다. 중개인 중에는 조선족 뿐 아니라 사업상 북한과 관련된 이들도 많으며, 평소 이들을 통해 소규모 접촉이 종종 이뤄졌다는 것.
남북대화무드가 조성된 기간 중에는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어느 정도 교류의 여지가 열려있었다. 정부는 이와 같은 민간 부문 교류 활성화를 위해 종류에 따라 상봉 300만 원, 생사확인 100만 원 등 일정액을 정해 지원금으로 지급하고 있기도 하다. 2011년에는 1250만 원이 이 민간교류경비로 집행됐다.
상봉자들에게 지속적인 교류 길 열려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