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진화살> 마지막 장면은 유쾌하다.
아우라픽쳐스
사회학자 하버마스는 헌법을 통해 조직된 정치체계와 법은 '사회적 통합이 이룩되지 않을 때를 대비하는 일종의 안전망'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자기결정사상을 핵심으로 하는 민주주의를 통해 만들어진 법이 사회적 갈등에 대해 공정한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사법부가 '공정한 사회적 중재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냐고 묻는다면, 긍정적으로 답변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김명호나 강정구는 모두 대학교수였다. 빈틈 많은 검사의 논리나 재판부의 일방적인 공판진행을 그냥 묵과하지 않을 정도의 치밀한 논리력을 갖춘 이들이란 의미다. 그러나 그런 그들도 사법부의 일방적 판결을 제지할 수 없었다. 하물며 보통 사람은 어떻겠는가?
사법부가 작심하면 대학교수일지라도, 억울해도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배에 맞은 화살이 튕겨져 나왔다고 하는데도, "내가 한 말의 의미는 그것이 아니"라고 항변해도 판사가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재판을 한 번이라도 받아본 이들이라면, 한국에서 판사는 그 자체로 '권력'이라는 사실을 의심조차 할 수 있을까?
한미FTA 등 사회문제에 대해 개인적 의견을 밝힌 몇몇 판사에게 '사법부의 독립을 훼손한다'든가 '정치 판사'라고 비난 하는 이들이 있다. 그런데 막상 이들은 촛불시위 관련 재판에 노골적으로(그리고 정치적으로!) 개입했던 판사를 버젓이 대법관으로 임명한 이들이다. 사법부를 이용하려는 권력이 있고, 그 권력에 흔쾌히 부합하는 '일부' 판사들이 존재하는 한, 사법부의 치부를 드러내거나 정치적으로 민감한 재판이 '공명정대'하게 진행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영화 <부러진 화살>이 우리에게 고발하고 있는 것은 김명호 교수의 억울함이 아니라, 이 사건을 통해 본 사법성역의 냉정한 현실이다.
부러진 화살, 흥행할 수 있을까?영화는 김명호 교수 사건을 통해 사법부의 위선을 낱낱이 폭로하고 있기 때문에 비슷하게 억울한 사연이 있는 이들에게 큰 공감대를 얻을 만하다. 그럼에도 영화의 흥행은 장담하기 어렵다. 정지영 감독의 매끄러운 연출과 배우 안성기의 안정되고 진실된 연기에도 불구하고, 박준 변호사를 연기한 박원상의 애절함과 기자를 연기한 김지호에 대한 심리적 공감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고리타분할 수도 있는 사회비판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조심스럽게 흥행을 기대해보는 이유는, 이 지긋지긋한 몰상식과 권력의 횡포, 억울함이 깨끗하게 해소되었으면 하는 2012년이기 때문이다. 상식이 위선을 이겼으면, 거짓이 패배하는 모습을 꼭 보았으면 하는, 상식을 지키는 일이 더 이상 '꼴통'이 되는 것이 아닌 세상에서 살고 싶은 2012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그리고 우리가 김명호 교수 사건이나 강정구 교수 사건을 표면적으로만 이해하고 보였던 냉소와 비난들, 그 위선의 공범이 되었던 과거를 반성해 보기 위해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대학 교수도 아니고 전문지식도 없어 저항도 못하고 무전유죄의 억울함을 감내하고 있을 이름 없는 이들에게 공감이라도 해보기 위해서다.
그래서인지 한 포털사이트에는 이 영화의 '관람전 기대지수'가 10점 만점에 9.7점을 기록했다. 1월 19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부러진 화살'이 위선과 몰상식을 관통하기를 기대한다. 올해는 무엇이든 바꾸고 싶은 2012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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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가 작심하면, '교수'도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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