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병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 2010년 12월 10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열린 '세계인권선언 62주년 기념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권우성
인권활동가에게 있어 국가인권위원회는 말 그대로 '애증'의 존재입니다. 사랑하고, 그러면서 동시에 미움의 의미를 담은 이 '애증'이라는 단어만큼 국가인권위를 향한 활동가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단어는 없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여러 정부 부처 중 하나일지 모르겠지만 이 조직을 만들고, 또 그 온전한 독립성을 지켜주기 위해 바쳐야 했던 단식농성과 절규를 돌이켜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오늘로부터 딱 12년 전인 그때. 2000년 연말에서 2001년 새해로 넘어가던 13일간의 노상 단식농성이 그것입니다. 당시 30여 명의 남녀 인권활동가들이 30년 만에 닥쳐왔다는 살인적 혹한 속에서 침낭 한 장만을 몸에 두른 채 '국가인권위원회법' 통과를 요구하며 농성을 했습니다. 이 '지독한 활동가들의 처절함'은 대한민국 인권운동사에 길이 남을 눈물겨운 투쟁이었습니다.
마침내 그해 가을, 국가인권위법이 아슬아슬하게 두 표 차로나마 국회를 통과할 수 있었던 힘이 바로 이것이었음을 부인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만들어낸 국가 인권위가 이명박 정부 들어서서, 특히 지난 2009년 7월 취임한 현병철 위원장 체제 이후 걸어온 길은 인권활동가들의 입장에서는 악몽, 그 자체일 뿐입니다.
스스로 포기한 국가인권위의 정체성 어쩌면 이 정부의 기준으로 본다면 현 위원장의 업무 수행 평가는 매우 성공적인 것일지도 모릅니다. 지난 2010년 발생한 국가인권위 상임위원을 비롯한 자문위원의 연쇄 사퇴 파동, 그리고 이를 전후한 국내외 인권관련 단체와 인사들의 비판에도 국가인권위에서는 아무런 자성의 모습을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국가인권위를 지탱해주던 그 많은 유수의 자문위원도 떠났습니다. 더 나아가 지난 2011년 12월, 4년간 홍보대사로 일해온 방송인 김미화씨 역시 한겨울 물대포를 쏴대는 경찰의 야만적 행태에 항의조차 하지 않는 국가인권위에 항의하며 사퇴했습니다. 그럼에도 국가인권위의 입장은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어쩌면 국가인권위는 그동안 불편했던 이들이 모두 떠나도록 기다린 것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입니다.
그리고 2012년 1월 3일, 국가 인권위원회는 참 요상한 의결을 하나 했습니다. 마침내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포기하는 의결이었습니다. 임시전원위원회를 통해 2012년부터 2016년까지 국가인권위원회가 정부에 권고할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 중 '국가보안법 폐지' 입장을 번복하기로 한 것입니다.
즉, 지난 2006년 유지해온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핵심 추진과제로 명시한 제1기 NAP 권고안을 국가인권위가 스스로 포기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대신 국가보안법의 인권침해적 요소를 개선하라는 권고안을 새로 포함하기로 했다는 것인데, 이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반대해온 법무부의 기존 입장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으로 인권단체는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국가인권위가 지난 1기 권고안에서 명시한 '국가보안법의 폐지' 과제를 포기한 근거가 무엇인지 정말 궁금합니다. 답은 둘 중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첫째는 국가인권위의 지난 1기 당시 국가보안법 폐지 판단은 잘못됐다는 것. 아니면 둘째, 이제는 국가보안법이 있다 해도 별 문제가 없어 그냥 독소조항의 일부 내용만 수정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국가보안법 폐지 입장이 바뀐 진짜 이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