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리마을 앞에 있는 배울교
최오균
동이리는 한국전쟁 전에는 개성 왕씨 80여 호가 집성촌을 이루었고, 마전군 당시 군내에서 가장 으뜸가는 마을이었다고 한다. 동이리 마을 앞에는 '배울교'라는 다리가 있는데 이 다리의 이름도 큰배울이라는 이름에서 유래되었을 것 같다.
동이리가 있는 미산면은 1945년 8.15 광복과 동시에 전 지역이 3.8선 북쪽에 위치하여 공산치하에 놓였다가, 한국전쟁이 끝난 후 1954년 11월 17일 행정권이 수복되어 민간인 입주가 허용되었다.
금광과 철광이 있었다는 '금굴산(金窟山)'금굴산(金窟山, 金堀山)은 우정리와 경계를 이루는 곳에 높이 195.7m의 산으로 쇠가 많이 매장되어 있다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일제강점기에는 금광과 철광이 개발되었으며, 채굴로 인해 산 내부가 텅 비어있어 '공굴산'으로 불리기도 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마전군편에는 미두산(尾頭山)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자세한 유래는 알 수 없다. 인근에 대홍수로 인하여 온천지가 물바다였는데, 산 정상만 소등에 앉은 쇠파리만큼 남았다 하여 '쇠파리산'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기도 하다. 이 내용은 마치 노아의 방주를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또 고려시대에는 봉화를 올렸던 곳이라 하여 봉화산이라고도 불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