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오마이뉴스 자료사진).
유성호
- 박종철 열사가 군사독재의 고문으로 생명을 잃은 지 어느 덧 25년이 되었다. 그의 죽음은 전두환 군사독재정권 하에서 우리 사회 민주화의 결정적 분수령이 되었고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 역할을 했다. 박종철 열사의 의로운 죽음이 오늘 한국사회에 갖는 의미를 평가해 달라."박종철 열사의 죽음은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정치적 민주주의의 초석을 놓았고, 국가권력을 통제해야 한다는 사상이 공유되도록 만들었다. 통제되지 않고 감시받지 않는 국가권력은 시민에게 고통을 주기 마련이다. 그런데 MB정권 출범 이후 국가폭력은 고삐가 풀렸다. 2010년 벌어진 양천서 고문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경찰은 주전자로 피의자에게 물고문을 가했다. 촛불시위에 참여한 시민에 대하여 공권력은 절제된 모습으로 사용되지 못했다. MB정권이 행사하는 국가폭력은 새삼 박종철의 피살 원인을 생각하게 만든다."
- 박종철 열사가 조국 교수의 고등학교와 대학교 선후배 사이인 것으로 안다. 1980년대 조국 교수가 본 박종철은 어떤 학생이었나."박 열사는 나의 고등학교 1년 후배, 대학 2년 후배였다(그가 재수했기 때문에). 대학 시절 종철은 모든 일에 진지하고 성실한 학생이었다. 당시 한국사회는 군부독재와 천민자본주의가 융합된 모습이었다. 그는 그런 한국사회의 모순을 자기 일처럼 느꼈다. 그렇게 진지하게 고민하는 그의 모습을 볼 때마다 내 자신이 부끄러울 정도였다. 참으로 역설적인 일은 그가 목숨을 바쳐 끝까지 지켜준 운동권 선배 박종운씨가 2004년 한나라당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하였다는 점이다."
- 당시 후배 박종철과 찍은 사진이 있나."당시 운동권 학생들은 사진찍기를 꺼렸다. 시위하다가 끌려가면 경찰이 사진 등 관련 기록을 뒤져서 관련자를 찾았기 때문에 가급적 사진을 찍지 않으려고 하였다. 문서도 회람 후 즉각 파기하였다. '기록은 곧 위험이다'라는 등식이 성립할 정도로 기록에 대한 두려움이 대단했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그와 찍은 사진이 한 장도 없다."
- 박종철 열사의 죽음이 조국 교수의 삶과 사상에 미친 영향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나."종철이 고문을 받다 죽었다는 소식은 20대의 나에게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그 순간 그의 죽음은 내 머릿속 깊이 새겨졌다. 사실 내가 형사법을 전공으로 하게 된 것도 종철의 영향이 크다. 그가 국가폭력에 의해 생명을 잃었을 때 나는 대학원생이었다. 국가권력이 피의자나 용의자도 아닌 참고인을 끌고 가서 고문으로 죽였다. 물론 피의자나 용의자는 죽여도 좋다는 얘기는 아니다.
도대체 민주사회에서 형사법이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종철에 대한 부채감으로 내가 2005년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이란 책을 내었을 때, 그 책을 종철에게 헌정했다.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이란, 수사기관이 법을 위반하여 수집한 자백이나 증거물은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법칙이다. 고문은 대표적인 '위법한 증거수집방법'이다. 현재 이 법칙에 대해선 대법원 판례가 확고히 자리 잡았는데, 길게 보면 종철의 죽음 덕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내가 학문 외에 사회참여에 적극적인 것도 종철에 대한 부채의식 때문이다. 종철의 사망 이후 25년이 흘렀지만 매년 1월이 되면 나는 그의 삶과 죽음을 생각한다. 그를 고문했던 많은 사람, 그처럼 고문당했던 수많은 사람을 생각하며 종철이 이루고자 했던 뜻을 이루자는 다짐도 하게 된다. 지금도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종철이가 지금 살아 있다면 뭘 할까?'"
- 25년 전 박종철 열사의 의로운 죽음을 기폭제 삼아 온 국민이 함께한 6월 민주항쟁의 성과가 MB정권 등장과 함께 크게 훼손되어 왔다고 본다. 이런 MB정권의 부조리와 불의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다고 보나."첫째, 금년에는 총선과 대선이 있다. 민주주의는 선거를 잘 해야 작동한다. 이번 두 번의 선거를 통해서 MB정권의 실정을 심판하고 한나라당의 재집권을 막아야 한다. 그동안 훼손된 6월 민주항쟁의 성과를 복원하고, '정글자본주의'의 창궐을 막아야 한다. 둘째, 선거가 민주주의의 모든 것은 아니기 때문에 대의민주주의 외에 광장민주주의를 강화해야 한다. 대의민주주의와 광장민주주의의 결합이 진짜 민주주의다."
- 최근 김근태 선생도 고문후유증으로 돌아가셨고 박종철 열사도 당시 독재권력의 물고문으로 소중한 생명을 잃었다. 그러나 지금 목사가 된 고문기술자 이근안이나 과거 인권침해 가해자들에게서 진정한 참회나 반성의 모습은 볼 수 없다. 과거사에 대해 '반성 없는 가해자'가 왜 아직도 한국사회에서 득세한다고 생각하나."다행히도 이근안은 법적으로 처벌 받았다. 그런데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근안은 목사가 되어 반공적 시각으로 자기의 과거사를 정당화하고 있다. 심지어 '고문이 애국이었고 예술이었다'는 망언을 하였다. 나는 한국 기독교계가 어떻게 이근안에게 목사직을 허용했는지 이해할 수도 용인할 수도 없다. 나는 기독교계에서 그의 목사직을 박탈해야 마땅하다고 본다. 자신이 저지른 야수적 고문을 반성하기는커녕 부끄럼도 없이 하나님을 파는 이근안 목사라니! 이런 현실은 한국사회의 도덕성을 무너뜨리고, 이근안적 사고를 많은 사람들이 따르게 만든다. 아직 '용서'를 말할 때가 아니다. 반성 없는 가해자가 활보하는 세상이라니….
한편 이근안 외의 많은 고문 가해자들이 증거부족 또는 공소시효 종료 등으로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 법률적 부조리다. 야만적 고문으로 인해 피해자와 그 가족의 삶은 철저히 파괴되고 망가졌다. 그러나 가해자의 불처벌은 법률로 보장되었다. 이런 부조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다른 모든 선진국에서 그렇듯이 반인권적 국가범죄에 대해서 공소시효를 정지하거나 폐지하는 입법적 조치가 있어야 한다."
"BBK 합리적 의심 있었던 것 사실... 징역 1년 너무 가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