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19일 서울시의회 별관 앞에서 학생인권조례 성소수자 공동행동, 서울교육희망네트웤, 인권단체연석회의,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 서울본부 등이 "학생인권조례 원안통과"를 주장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홍현진
지난해 12월 19일 서울 학생인권조례가 서울시의회를 통과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의 공표를 앞두고 다시 찬반으로 나뉘어 이념적 대결로 치닫는 것을 우려하며, 서울 학생인권조례 제정에 앞장 섰던 서울시 교육위원회 소속 의원 8명(김상현 위원장, 김명신, 김종욱, 김형태, 서윤기, 윤명화, 최보선, 최홍이 의원)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다음과 같이 호소합니다.
저희는 학생인권조례는 교육적인 문제이니만큼 최대한 차분하고 냉정하게, 그리고 학생 본위에서, 교육적인 잣대로 접근할 것을 주문합니다. 또 다시 진보-보수의 이념적 대결로 치닫게 되면, 무상급식 논쟁에서 보듯 소모적인 진흙탕 싸움으로 번져, 자칫 불필요한 혼란과 국력낭비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학생들의 가슴을 멍들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제정된 조례이니만큼 이제는 학교 현장에 잘 안착하도록 모두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일부에서 우려하거나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조례가 정착하는 과정에서 오는 과도기적 현상입니다. 누가 뭐래도 학생인권의 신장과 확대는 시대적 요구이자 거스를 수 없는 강물이며, 넘어질까 염려하여 아이의 걸음마를 포기하는 부모가 없는 것처럼, 역사의 수레바퀴를 진전시키는 작업에 다 함께 동참해 주기를 호소합니다.
일부에서 다소의 혼란과 갈등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지나치게 침소봉대하거나 왜곡, 호도하는 것에 대해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안내 및 해명성 호소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학생인권조례 제정의 의미] 주민 발의에 동참한 10만 시민의 뜻지난해 12월 19일, 학생인권조례가 경기도와 광주에 이어 서울에서 세 번째로 통과되었습니다. '수도 서울'에서 통과되었다는 점과 함께 무엇보다 '주민 발의'를 통해 서울시민들의 힘으로 이루어낸 것이라는 점에서 상징적인 의미가 더욱 크다 하겠습니다. 이는 서울 학생인권조례를 열망하며 서명에 동참한 10만여 명의 서울시민들뿐만 아니라 이를 염원한 모든 이들의 바람이 더욱 간절하고 절실했기 때문입니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한 단계 진전시킨 것입니다. 학생이라는 이유로 명령과 통제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소중한 인격체로서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명제가 공감대를 이룬 것입니다. 학생인권조례는 말 그대로 학생들에게 인간적인 대접을 받을 수 있도록 조례로 정하자는 것입니다. 이제는 학생들이 고통스러워하는 짐을 덜어주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줄 때가 왔다고 봅니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들의 학습 환경을 좀 더 개선하고, 학생들의 인권을 무시하는 행동들을 제거해보고자 하는 노력에서 나온 것입니다.
[반대 목소리 반영] 학교가 교칙으로 정할 수 있게 열어뒀다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와 서울시 의원들은 조례를 제정하면서 상위법을 충분히 검토했습니다. 오히려 헌법이 보장하는 만큼의 내용을 담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반대하고 우려하는 분들의 목소리를 경청하여, '집회의 자유'와 '휴대전화 소지'에서 보듯, 총론에서는 허용하되 각론에서는 제한하는 장치를 많이 두었습니다. 또한 교육청이 시행규칙을 만들면서 다듬을 여지를 많이 주었고, 무엇보다 학교 교칙으로 정할 수 있도록 많은 부분에서 문을 열어놓았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여성에게 참정권을 주자고 했을 때도, 신분에 따라 또는 장애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면 안 된다고 했을 때도, 처음에는 반대와 논란이 있었습니다. 학생인권 문제를 둘러싼 논쟁들도 과도기적 현상이라 봅니다.
이제는 학생인권조례를 두고 옳으니 그르니 찬반으로 나누어 쟁론하기보다는 어떻게 잘 뿌리내리게 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때라고 봅니다. 선진국은 물론이요 방글라데시까지 법률로 체벌이 금지되고 학생인권이 보장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 주시고, 무엇보다 우리나라가 유엔가입국이라는 점을 생각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반기문 총장이 "양심을 가진 인간으로서 우리는 특별히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을 거부합니다. 문화적 태도와 보편적 인권이 대립할 때는 보편적 인권이 반드시 우선되어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알다시피 반기문 총장은 진보인사도 보수인사도 아닙니다. 유엔 가입국이라면 당연히 보편적 인권을 따라야 한다는 의견을 존중하였음을 말씀드립니다.
[재의 요청의 부당성] 학생인권조례는 무엇보다 법정신에 충실했다정부 어느 부처보다도 학생인권 신장과 확대를 위해 가장 노력해야 할 교과부가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재검토 또는 재의 운운하는 것은 교과부가 왜 존재하는가를 되묻게 합니다. 지렛대, 디딤돌, 견인차 역할을 해야 할 교과부가 장애물, 걸림돌 역할을 하고 발목잡기를 시도한다면 국민들로부터 외면을 받는 것은 물론 지탄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서울시의회 윤명화, 서윤기 의원님이 행정사무감사 때 이대영 서울시교육청 부교육감께 "의회에서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면 공포하겠느냐"고 질문했습니다. 이대영 부교육감은 "공포하겠다", "의회를 존중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대영 부교육감은 약속한 대로 학생인권조례를 조속히 공포하여, 학생인권조례를 두고 야기되는 소모적인 논란을 조속히 잠재워야 할 것입니다.
법령에 위배되거나 공익을 현저하게 침해할 우려가 있을 때, 재의를 요청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학생인권조례는 결코 법령에 위배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권과 정의를 지향하는 법정신을 잘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경기도교육청의 경우, 체벌을 금지한다는 직접적인 표현을 썼지만, 서울의 경우, 직접체벌·간접체벌이라는 말도 없고, 그렇게 구체적인 내용까지는 담지 않았습니다. 다만 16조에 "학생은 체벌, 따돌림, 집단괴롭힘, 성폭력 등 모든 물리적 및 언어적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를 가진다"고 하여. 거의 선언적인 의미에 가깝습니다. 소위 '간접체벌'까지 모두 금지한 것이 아니라, 현행대로 '교육적인 벌'은 허용하고 있는 셈입니다.
따라서 교과부의 시행령 조항('체벌'을 금지하고 '교육적인 벌'을 허용 / 선생님의 정당한 지시에 따르지 않는 학생은 지금처럼 교실 뒤에 서 있으라고 하거나 성찰교실로 보낼 수 있음)과 학생인권조례는 상충되지 않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학생인권조례는 학칙으로 정할 수 있는 입법재량의 헌법적 한계를 구체화한 것일 뿐, 학생지도의 내용과 권한을 통제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