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4월 29일 육군본부 보통군법회의에서 특정범죄 가중처벌 위반 행위에 대한 선고에서 '윤필용 사건'의 당사자인 윤필용 수도경비사령관(맨 오른쪽)이 재판 내용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Y수사팀은 김재규 보안사령관 때부터 보고받은 윤필용 소장의 동향에 관한 존안자료들을 정밀 분석했다. 특히 두 사람이 이른바 파워 게임을 벌였기 때문에 보안사가 윤 소장을 내사한 자료는 상당히 축적돼 있었다.
윤필용이 방첩대장을 끝내고 나간 뒤 박 대통령의 괘씸죄를 살 만한 첫 언행은 그가 사단장 시절인 1968년 정부의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비판했다는 정보 보고였다. 그리고 3선 개헌 직후에는 정부에 대한 비판여론의 표적으로 이후락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목, 해임해야 한다고 박정희에게 진언하다가 오히려 꾸중을 들었다. 이때부터 그는 이후락과 긴장관계에 들어갔다. 또 유신 선포 직후에는 박정희에게 군 장성 출신을 유정회 의원으로 많이 임명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러자 박정희는 크게 면박을 줬다.
"쓸데없는 일에 관여하려 말고 맡은 일이나 잘해."여러 차례 핀잔을 듣고 그는 박정희의 군 현역시절 부관으로서 이것저것 진언하던 관계가 이미 끝났음을 분명하게 알았다. 윤필용에 대한 최근의 내사 자료는 그가 군 장성 인사를 좌지우지하고 있으며, 영관급 인사도 그의 참모장 손영길 준장이 챙긴다는 소문이 주종이었다.
윤필용 직계들이 군 요직을 차지하고 앉아 진급을 미끼로 뇌물을 받는다는 제보도 있었다. 심지어 군 수뇌급 장성들이 1972년과 이듬해 신정 때 윤필용의 자택에 세배를 갔다는 동향보고에 Y수사팀은 아연했다. 윤필용의 직계세력은 3개의 맥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첫 번째가 수경사 헌병대 출신으로 이루어진 육본 범죄수사단 등의 헌병장교들이었다. 범죄수사단장이 그 중간 보스였다. 두 번둘째는 육본 인사참모부의 진급과 등을 장악한 인사담당 장교들이다. 인사운영감과 대령과장을 지낸 뒤 1973년 초 전방 연대장으로 나간 권익현 대령, 진급인사실 신재기 대령 등의 이름이 적혀 나왔다.
세 번째 부류로 윤필용의 직계가 많은 경남 울산 출신 인맥이 도마에 올랐다. 당초 윤필용은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긴장관계였다. 그런데 직속부하인 수경사 참모장 손영길 준장과 이후락 부장의 막료인 이재걸 중정 감찰실장이 울산 출신 동향으로 가까운 사이였다. 이 두 사람과 중정에 많았던 울산 그룹이 나서 윤필용과 울산 출신인 이후락을 화해시켰다는 것이다.
그 후 윤필용은 술자리에서 이후락에게 "후계자는 형님이 하면 되는 것이고 각하가 더 노쇠해지기 전에 물러나시게 진언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정보가 입수돼 있었다.
윤 소장에 대한 존안자료 등 검토와 내사를 끝낸 수사팀은 1973년 3월 6일 오전 그의 자택에 수사관 2명을 보냈다. 집 앞에서 수사관 한 명은 차에 남아 있고 윤 소장과 잘 아는 김아무개 소령이 혼자서 들어갔다.
"사령관님, 저희와 잠깐 좀 가셔야겠습니다.""그래, 올 줄 알고 기다리고 있었다."윤필용은 이미 체념한 표정으로 선선히 일어났다. 윤필용이 구속된 후 1973년 3월 중순경부터 그의 직계세력으로 분류된 3대 인맥의 중간보스들이 '빙고호텔'이라 불리는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줄줄이 잡혀 들어갔다. 이 Y사건 수사는 군사기밀로, 외부에 철저히 차단된 채 진행돼 일반 국민은 전혀 알지 못했다.
1973년 3월 중순 어느 날 저녁, Y사건 수사반장 백동림 중령은 문관들인 실무 수사관 4명과 그날의 일일결산을 하고 있었다.
"제보에 따라 추적한 결과 증거가 분명한데도 계속 오리발을 내미니…. 이런 놈은 좀 고생할 수밖에 없습니다."윤필용계(系) 인사담당 장교들을 맡은 수사관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진급 청탁과 함께 돈을 쑤셔 넣은 성냥갑을 디밀어놓고 나온다는 인사비리 제보가 들어온 것이다. 뇌물을 주고 진급 청탁을 하는 장교는 따로 줄이 없는 비육사 출신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를 끝내 부인하는 육본 인사참모부 진급실의 S 대령은 빙고호텔에서 가혹행위를 당했다.
실체를 드러낸 군내 비밀 사조직 '하나회' 윤필용계 3대 인맥 중 인사담당 장교들을 조사한 수사관은 Y사건 수사반의 일일결산 자리에서 반장인 백동림 중령에게 보고를 겸해 물었다.
"과장님, 그런데 '하나회'라고 들어보신 적 있습니까? 육사 출신들이 똘똘 뭉쳐서 윤 소장을 업고 다 해먹은 모양입니다."수사관은 백 중령에게 하나회의 주요 보직 독점 사실과 인사 압력 등을 보고했다. 백 중령은 이를 강창성 사령관에게 직보했다. 이에 강창성은 육사 출신 영관급 장교들이 모여 있는 연구발전실의 실장 정상문 대령(육사 12기)을 불렀다.
연구발전실은 육사 우수졸업자와 교수부 요원들이 모인 곳이다. 실장 정 대령을 비롯해 신승철(육사 15기·전 한양대 교수), 윤창하(육사 15기), 황종대(육사 16기) 중령 등은 모두 반(反) 하나회 정서가 강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하나회에 대한 초동조사를 담당했다.
연구발전실장 정상문은 강창성에게 불려 가 하나회 조사를 지시받고, 얼마 후 다시 그를 만나 하나회의 문제점을 아는 대로 토로했다.
"오래 전부터 7성회라는 것은 있었습니다. 7성회가 확대된 단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강 사령관은 보고를 듣고 사령부 내 전 육사 출신 장교들에게 동기생 중 하나회원에 대해 모든 정보를 적어내도록 지시했다. 육사 출신으로 비(非) 하나회 장교들인 연구실 요원들은 '군내에 인맥과 파벌을 조성하고 인사비리까지 저지른 사조직 하나회를 이번 기회에 발본색원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하나회 조직의 핵심 전두환과 노태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