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학생인권조례 원안통과를 요구하며 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는 청소년 활동가들
유성호
너덜너덜, 아등바등... 2년이 언제 지나가버렸지?늘 이런 일들의 연속이었다. 같이 모여 일을 할 수 있는 공간 하나 못 구할 만큼 가난하기도 하고, 활동을 하는 청소년들은 학교와 가정문제처럼 또 다른 삶을, 하나씩은 더 짊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상황에서 뭔가를 해보자고 아등바등 하다 보니 내 2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빠르게 지나가버렸다.
함께 운동한다는 '어른 활동가'들이 꼰대짓을 선보여주실 때마다 대놓고 하지 못했던 '개새끼'라는 말을 속으로 끝없이 삼켰다. 그렇게 청소년 활동가라고 무시하는 것도 서러워서 죽겠는데, 그 앞에 내 정체성을 드러내주는 여성이라는 단어 하나가 추가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보다 더 두터운 가족주의와 보호주의를 마구 뽐내주시기 덕분이다. 더 찌질한 어른들은 성희롱까지 더해 완벽한 진상짓의 삼단콤보를 보여주신다.
'싸가지 없다'는 말을 들어가면서도 걸고 넘어져야만 했다. 그건 자존심의 문제를 넘어, 사회운동을 함께 해나가는 동등한 '주체'로써 인정받기 위한,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의 '지랄'이었다. 그렇게 '지랄'할 때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이러고 사는지 모르겠다 싶기도 하고 그런 푸념은, 곧 '그래서 후회하니?' 하는 지긋지긋한 질문으로 이어지곤 했다.
사실 청소년운동을 하는 나에게 '대학'은 꽤나 민감한 주제였다. 이제껏 학벌사회를 그토록 열렬히 비판해왔는데, 어느새 나는 학벌사회를 보다 더 견고하게 유지하는 입장에 서게 되었다. 그것도 가장 정점에서 말이다. 그때, 함께 활동하던 친구들은 대학거부 운동에 매진하고 있었기에 친구들을 만나서 얼굴을 마주하는 것조차도 죄스러웠다.
또 다시 스스로에게 물었다. 차라리 이런 일에 아무런 문제의식도 느끼지 못하고, 비판도 할 줄 모르는 삶을 살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이렇게 매일을 아슬아슬하게 외줄타기를 하는 기분으로 지내야 했을까 하고 말이다. 내가 위로받을 수 있는,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 줄 수 있는 그 어떤 것이 간절했다.
학교에 예비수업을 들으러 갔다가 울적한 마음에 옆 동네인 홍대 거리를 혼자 거닐었던 적이 있다. 그때 들렸던 노래가 바로 이 노래였다. '함부로 태어나지 말라'는 노래가사가 참 역설적이게도 그 순간, 나를 일으켜세웠던 것 같다. 난 아직도 잘 모르겠다. 왜 그 한 소절이, 스스로에게 물었던 그 질문에 대해 다만 '그럼에도 버텨내라'는 대답을 하게 했었던 것인지 말이다.
내게 주어진 시간을 살아내는 것은 결국 나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체념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냥 함부로 태어나지 말라는 노래를 핑계 삼아 '인생은 금물이라지만, 그래도 난 잘 살아낼 거야 불끈!' 하는 오기였을 지도 모른다. 아니면 '다음엔 진짜 태어나지 말아야지' 하며 혼자 중얼거리는 것으로 울적함을 쏟아냈던 것이었을지도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