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린 존>의 한 장면
월드시네마
그러던 어느날, 나는 미국이 아프카니스탄을 침범했다는 놀라운 소식을 전해들었다. 그 명분이야 뭐가 됐든, 미국의 가공할 파괴력 앞에 속수무책 무너져가는 약소국의 소식을 전해들으며 나는 내가 믿는 신의 공의를 생각하게 됐다. 그러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에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고민 끝에 한 편의 시를 써 발표했다. 시인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시를 쓰는 것이었기에….
<신들의 전쟁>알라의 초대장을 담은 소포 꾸러미가 미국 전역을 누빈다.
여호와의 증오를 담은 융단 폭격이문명의 사각 오지 아프카니스탄을 때린다.이스마엘의 아버지도,이삭의 아버지도,오직 한 사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건만 이름을 달리 한 신의 저주로 무고한 생명들이 이유도 모르는 채 수 없이 죽어간다. - 시인 노을그렇지만 세상은 달라지는 게 하나도 없었다. 아니, 미국의 약소국 사냥은 더욱 심각하게 노골화돼 갔다.
그렇게 짙은 한숨으로 절망의 나날을 보내던 중, 실로 놀라운 소식 하나를 전해 듣게 됐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개신교 학교법인의 학교였기에, 매주 전교생이 모여, 합동 예배를 드리곤 했다.
그런데 지금 그 목사님의 성함은 잊었지만, 어느 한 목사님의 설교가 나를 절망의 늪에서 번쩍 눈 뜨게 했다. 이라크로 떠난 유은하라는 분의 가슴 아프면서도 놀라운 얘기였다.
그 목사님이 그날 아침에 합동 예배에 오기 전, 신문 기사를 하나 보게됐단다. '인간방패'를 자처하며 미국의 대량 학살에 항거하는 세계의 평화 애호가들이 인간띠를 형성해 지금껏 이라크에서 반전·반학살 활동을 펼쳐왔단다.
그런데 얼마 전, 미국의 마지막 경고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철수했단다. 한국에서도 모든 사람들이 철수했지만, 단 한 명. 여성 선교사인 유은하씨만이 국가의 철수령에 불응하며 계속 현지에 남았다는 것이다. 목사님은 이어서 말씀하셨다.
"저는 회개합니다. 제 가족 중에, 제 교회 성도 중에 유은하씨와 같은 진실한 양을 하나도 양육하지 못했음을 진심으로 주님 앞에 자복하며 뉘우칩니다. 아울러 유은하씨를 키워낸 교회 목사님께, 유은하씨를 양육해 주님의 제전에 바친 갸륵한 부모님께 진심으로 존경을 표하는 바입니다."나는 너무도 복받치는 마음에 몇 날 며칠을 속으로 울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다시 한 편의 시를 썼다.
<유 은 하> (이라크전 인간 방패 유은하를 기리며)무고한 이라크 영혼들의 울분으로 하늘이 들끓는다 아우성치는 미군 넋들의 피눈물로 대지가 술렁인다 온세상을 뒤흔드는 천둥 벼락 몸부림 치는 바람에 실려 비가 내린다휘몰아치는 사막의 폭풍속으로 갸냘픈 한 여인이 걸어 온다하늘의 공의를 빙자한 인간의 탐욕 속으로 홀연히 뛰어든 여 전사 해방자의 포탄에 팔 다리가 잘리고 점령자의 워커발에 뇌수가 쏟아져도 모두는 그저 분노의 공포로 신음만 삼킬 뿐부모 잃은 아이들의 절규를 차마 어쩌지 못해그 작은 온몸으로 하늘을 가려보지만지옥에서 날아온 불기둥은 두눈을 감은 채모두를 삼키고 만다 이브라힘 난 널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 난 너와 같은 모슬렘이 아니어도 이름뿐인 내 형제를 용서 할 수 없단다 주여! 내 생명의 그리스도여 당신의 죽음이, 구원의 십자가가 이 어린 아이들 가슴에 저주로 자리하지않도록저를 보내소서 죽이소서당신 이름을 빙자한 크리스챤의 이기심에 가련한 이 아이들과 여인들이 쓸어져가고 있나이다이 맑은 눈빛에서 당신 사랑을 깨닫도록 이 무수한 죽음속에서 당신 눈물을 새기도록 제게서 탈출 두 글자를 거둬가 주소서 내 이름 유은하를 지우고당신 이름 당신 생명예수를 높이소서- 시인 노을그후, 나는 다시 약해져만 가던 의지를 다잡아 내 길을 걸어왔다.
그녀의 오늘이 무너지지 않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