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오늘이 무너지지 않길 기도합니다

강정마을 평화지킴이들을 기리며...

등록 2011.12.29 11:57수정 2011.12.29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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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악센펠드 증후군(Axenfeld-rieger syndrome)이라는 희귀 증후군을 안고 시골 무지렁이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어머님의 임신 관리 미숙으로 돌연변이가 일어나, 염색체 배열에 이상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선천성 녹내장, 급성 폐렴, 신장염, 기관지염, 원인 불명의 치아 손상 등으로 나는 어린 시절을 내내 병상에서 보냈다. 그러다 실명과 심장판막 이식수술까지 받아야 했고, 여러 번의 교통사고를 겪으며 내 삶은 누더기처럼 조각조각 헤져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시련과 아픔도 생후 1주일 만에 장폐색이란 병명으로 수술대에 올라야 했던 아들의 눈물 앞에선 흔적 없는 절망으로 잦아들어야 했다. 시각·청각·언어장애를 두루 겸비하고, 덤으로 지적장애와 발달장애를 종합세트로 선물 받은 아들은 내 삶을 절망의 불꽃이 아니라, 싸움닭의 투사로 변모하게 했다. 나는 더 이상 무력한 장애인이 아니라, 혼자서는 아무것도 해낼 수없는 아들을 위해 거친 벌판의 투쟁꾼으로 변해야 했던 것이다.

나는 2001년, 천안 소재 나사렛대학교 사회복지과에 입학했다. 아들을 위한 사회복지사의 꿈을 안고…. 불혹을 넘어 들어선 만학의 상아탑이었기에,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버텨야했고, 이겨내야했다. 그렇게 이를 악물고 흰지팡이 하나에 의지해, 서울에서 천안을 매일 통학했다.

무고한 생명들이 수없이 죽어간다

 영화 <그린 존>의 한 장면
영화 <그린 존>의 한 장면월드시네마

그러던 어느날, 나는 미국이 아프카니스탄을 침범했다는 놀라운 소식을 전해들었다. 그 명분이야 뭐가 됐든, 미국의 가공할 파괴력 앞에 속수무책 무너져가는 약소국의 소식을 전해들으며 나는 내가 믿는 신의 공의를 생각하게 됐다. 그러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에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고민 끝에 한 편의 시를 써 발표했다. 시인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시를 쓰는 것이었기에….


<신들의 전쟁>

알라의 초대장을 담은 소포 꾸러미가
미국 전역을 누빈다.


여호와의 증오를 담은 융단 폭격이
문명의 사각 오지
아프카니스탄을 때린다.

이스마엘의 아버지도,
이삭의 아버지도,
오직 한 사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건만

이름을 달리 한 신의 저주로
무고한 생명들이 이유도 모르는 채
수 없이 죽어간다.

- 시인 노을

그렇지만 세상은 달라지는 게 하나도 없었다. 아니, 미국의 약소국 사냥은 더욱 심각하게 노골화돼 갔다.

그렇게 짙은 한숨으로 절망의 나날을 보내던 중, 실로 놀라운 소식 하나를 전해 듣게 됐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개신교 학교법인의 학교였기에, 매주 전교생이 모여, 합동 예배를 드리곤 했다.

그런데 지금 그 목사님의 성함은 잊었지만, 어느 한 목사님의 설교가 나를 절망의 늪에서 번쩍 눈 뜨게 했다. 이라크로 떠난 유은하라는 분의 가슴 아프면서도 놀라운 얘기였다.

그 목사님이 그날 아침에 합동 예배에 오기 전, 신문 기사를 하나 보게됐단다. '인간방패'를 자처하며 미국의 대량 학살에 항거하는 세계의 평화 애호가들이 인간띠를 형성해 지금껏 이라크에서 반전·반학살 활동을 펼쳐왔단다.

그런데 얼마 전, 미국의 마지막 경고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철수했단다. 한국에서도 모든 사람들이 철수했지만, 단 한 명. 여성 선교사인 유은하씨만이 국가의 철수령에 불응하며 계속 현지에 남았다는 것이다. 목사님은 이어서 말씀하셨다.

"저는 회개합니다. 제 가족 중에, 제 교회 성도 중에 유은하씨와 같은 진실한 양을 하나도 양육하지 못했음을 진심으로 주님 앞에 자복하며 뉘우칩니다. 아울러 유은하씨를 키워낸 교회 목사님께, 유은하씨를 양육해 주님의 제전에 바친 갸륵한 부모님께 진심으로 존경을 표하는 바입니다."

나는 너무도 복받치는 마음에 몇 날 며칠을 속으로 울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다시 한 편의 시를 썼다.

<유 은 하> (이라크전 인간 방패 유은하를 기리며)

무고한 이라크 영혼들의 울분으로 하늘이 들끓는다
아우성치는 미군 넋들의 피눈물로 대지가 술렁인다
온세상을 뒤흔드는 천둥 벼락
몸부림 치는 바람에 실려 비가 내린다

휘몰아치는 사막의 폭풍속으로
갸냘픈 한 여인이 걸어 온다
하늘의 공의를 빙자한 인간의 탐욕 속으로
홀연히 뛰어든 여 전사

해방자의 포탄에 팔 다리가 잘리고
점령자의 워커발에 뇌수가 쏟아져도
모두는 그저 분노의 공포로 신음만 삼킬 뿐

부모 잃은 아이들의 절규를 차마 어쩌지 못해
그 작은 온몸으로 하늘을 가려보지만
지옥에서 날아온 불기둥은 두눈을 감은 채
모두를 삼키고 만다

이브라힘 난 널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
난 너와 같은 모슬렘이 아니어도
이름뿐인 내 형제를 용서 할 수 없단다

주여! 내 생명의 그리스도여
당신의 죽음이, 구원의 십자가가
이 어린 아이들 가슴에 저주로 자리하지않도록
저를 보내소서 죽이소서

당신 이름을 빙자한 크리스챤의 이기심에
가련한 이 아이들과 여인들이 쓸어져가고 있나이다

이 맑은 눈빛에서 당신 사랑을 깨닫도록
이 무수한 죽음속에서 당신 눈물을 새기도록
제게서 탈출 두 글자를 거둬가 주소서

내 이름 유은하를 지우고
당신 이름 당신 생명
예수를 높이소서

- 시인 노을

그후, 나는 다시 약해져만 가던 의지를 다잡아 내 길을 걸어왔다.

그녀의 오늘이 무너지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그가 '이라크 인간방패'로 평화활동을 하던 2003년 이라크에서 미군 병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가 '이라크 인간방패'로 평화활동을 하던 2003년 이라크에서 미군 병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유가일 제공

나는 얼마 전, 스크린도어, 가드레일, 하다 못해 점자 블록 하나 없는 지하철 역사에서 실족해 천골의 다발성 골절, 요추 염좌 두개골 타박, 슬관절 타박 늑골 골절 등으로 전치 6주 진단을 받고 기나긴 병상 생활을 한숨으로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29일 아침, <오마이뉴스>에서 놀라운 기사를 보게됐다.

'그가 바로 '인간방패'였다니... 충격입니다'

나는 다시 쏟아지는 눈물을 닦지도 못한 채, 단숨에 기사를 읽어내려갔다. 그리고 그의 아픔, 그의 눈물을 가슴 깊숙이 품어 안았다. 그녀가 개명해 6년 정도 외국을 떠돌았을 정도로 상처가 깊었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눈시울을 붉혀야 했다.

당장이라도 제주로 달려가고 싶다. 아니, 당장이라도 그 서슬 퍼런 정권의 폭력에 나 또한 함께 저항하고 싶다. 이제 겨우 일어나 잠시 동안이라도 컴퓨터 자판을 두드릴 수밖에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이 기사를 작성하게 됐다.

부디 무지막지한 탐욕의 폭력 앞에서 평화의 지킴이로 우뚝 선 그녀의 오늘이 다시 무너지지 않기만을 기도하며….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www.noulpoet.kr 제 누리집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www.noulpoet.kr 제 누리집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유은하 #이라크 #인간방패 #평화지킴이 #강정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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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시인으로 10년째 한국문인협회 회원과 '해바라기'동인으로 활동하고있으며 역시 시각장애인 아마추어 사진가로 열심히 살아가고있습니다. 슬하에 남매를 두고 아내와 더불어 지천명 이후의 삶을 훌륭히 개척해나가고자 부단히 노력하고있습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 탈시설만이 정도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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