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 이서 쌍렬각 한 모퉁이에 서있는 노비 목산의 비
전용호
이서면을 나오는 길에 작은 정려각이 보인다. 그 옆에 비스듬한 입석이 서 있다. 입석에는 '충노목산지비(忠奴木山之碑)'라고 새겨져 있다. 비석이라? 다듬지도 않은 자연석 한 면에 비명을 적어 놓았다. 보통 비석이 아니다. 직책이 충노? 충성스런 노비? 내용인 즉, 정유재란 때 의병으로 출병한 남편이 왜군에게 포로로 잡혔다는 소식을 잘못 전해 듣고 부인이 자결하니, 종 목산은 "내 어찌 홀로 살리오?" 하고 자결하였단다.
모시던 상전이 전쟁 중에 죽었으니, 노비가 따라 죽었다는 내용이다. 양반의 입장에서는 널리 퍼뜨리고 홍보해야 할 내용이었나 보다. 이보다 더한 본보기가 어디 있을까? 어차피 그럴 거면 좋은 돌에 비석을 써 주던지, 비각 안에 함께 모셔 주던지. 부인은 정려각을 세워주고 비 가림을 해줬는데….
아무리 주인과 생을 같이 한 노비라도 어쩔 수 없는 가 보다. 비각 밖에 한쪽 귀퉁이를 지키는 비석으로 자리 잡았으니. 내 눈에는 함께 죽어준 노비가 안타까워 비석을 세워준 게 아니라, 죽어서도 주인을 지키라는 양반의 끝없는 욕심으로 보인다.
독수공방이 생각나는 정자 독수정이서면을 나와 호수를 따라가다 갈림길을 만난다. 담양으로 빠지는 길과 호수를 계속 따라가는 길이 갈린다. 호수를 계속 따라가면 정자 기둥이 아름다운 물염정과 김삿갓 시비가 있는 물염적벽은 볼 수 있다. 담양으로 가는 길을 택한다.
행정구역은 담양으로 바뀌고 남면 소재지가 나온다. 남면 소재지에는 독수정이 있다. 큰 길에서 벗어나면 작은 천을 지나 산골마을로 올라가는 아주 정감 있는 길과 만난다. 커다랗게 구불거리는 길 언덕에는 작은 정자가 자리를 잡았다. 독수정이다. 독수정 앞에 서면 소나무 숲 사이로 내려다보이는 경치가 아주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