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세상에 저항하기> 책표지
마티
"역사가 창조적이려면, 또한 과거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가능한 미래를 예견하려면, 일순간 스쳐 지나간 일일지언정 사람들이 저항하고 함께 참여하고 때로는 승리하는 능력을 보여줬던 과거의 숨겨진 일화들을 드러냄으로써 새로운 가능성들을 강조해야 마땅하다고 믿는다."(하워드 진, <미국민중사> 중에서)<미친 세상에 저항하기>라는 책을 산 건 순전히 '옮긴이의 글'에 인용된 하워드 진의 말 때문이었다. <미친 세상에 저항하기>가 어떤 책인지는 전부터 알고 있었다. 일전에 '부시 정권의 비민주적 행태에 맞선 미국 시민들의 목소리를 담은 책'이라는 말을 듣고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은 했다.
이 책의 저자 중 한 명이 미국 독립언론 <데모크라시 나우!>의 창립자 겸 진행자 에이미 굿맨이라는 것도 흥미로웠다(다른 한 명은 그녀의 동생이자 독립 저널리스트인 데이비드 굿맨이다). 주류 언론이 다루지 않는 미국 사회의 그림자를 충실히 기록했을 것이라는 기대가 생겼다. 하지만 사실 미국 사회의 어두운 면을 기록한 책이 한두 권도 아니었기 때문에 굳이 살 생각까지는 없었다. 서점에서 이 책을 집어 들고 뒤적거리다가 하워드 진의 말을 발견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이 책을 사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미국의 진보사학자 하워드 진은 이제 세상에 없지만, 생전에 촘스키와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비판적 지성이었다. 명성으로 따지자면 하워드 진보다 촘스키가 한 수 위겠지만, 나는 하워드 진을 훨씬 높게 평가한다. 그의 글 속에 녹아 있는 민중에 대한 애정과 암담한 현실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낙관주의를 보며 깊은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워드 진의 대표작 <미국민중사>를 읽는 동안 얼마나 많은 밑줄을 그었는지 셀 수 없을 지경이다.
그런데 이 책을 우리말로 옮긴 노시내는 "<미친 세상에 저항하기>는 하워드 진의 충고를 충실히 따르는 책"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하워드 진의 말처럼 저자들은 미국 전역을 다니며 "저항하고 함께 참여하고 때로는 승리하는 능력을 보여줬던" 평범한 사람들을 만나 그대로 묻힐 뻔했던 이야기를 담아냈다는 것이다. 그러니 하워드 진의 팬을 자처하는 나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이 책을 살 수밖에.
9·11 이후 만들어진 '애국법'... 암담한 미국의 현실<미친 세상에 저항하기>가 보여주는 미국의 현실은 암담하다. 아직도 온존하는 인종차별 속에 흑인들은 부당한 차별을 받고, 정부 방침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표출하지 못한다. 또한 그 과정에서 시민적 자유 또한 위협받고 있다. 특히 9·11 이후에 만들어진 애국법은 미국의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애국법은 FBI가 휘두를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인 '국가보안자료요구서'의 발부 요건을 획기적으로 완화시켰다. 결국, FBI는 법원의 심사 없이도 '국가보안자료요구서'를 발부해 전화·재무기록·이메일 등을 압수수색할 수 있게 됐다. 애국법이 통과되기 전인 2000년에는 8500건의 요구서가 발부됐지만, 2004년에는 5만6000건이 발부됐다고 한다.
도서관과 테러리즘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도서관도 요구서의 마수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어느날 코네티컷 주의 도서관 연합체 '라이브러리 커넥션'에 FBI 요원들이 찾아와 '국가보안자료요구서'를 내밀었다.
국제테러 방지를 위해 2005년 2월 15일 오후 2시부터 2시 45분 사이에 도서관의 컴퓨터를 이용한 '모든 개인과 단체의 이용자 정보', '이용대금 지불 및 접속 정보 일체'를 넘기라는 내용이었다. 코네티컷 주의 사서들은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지키기 위해 이에 맞서기로 하지만, 요구서의 한 구절이 그들의 발목을 붙잡았다.
"이 요구서의 수취인은 FBI가 정보나 기록을 수색·입수했다는 사실을 타인에게 누설해서는 안 된다." 사서들은 가족에게도 자신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말할 수 없었고, '코네티컷 사서들에게 벌어진 사건'에 관한 질문을 받을까 봐 애국법에 대해서도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애국법 옹호자들이 열렬히 애국법을 찬양하는 동안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