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전달 조심한건 소란을 우려했던 것일 뿐"

<곽노현 교육감 제18차 공판>박 교수 지원은 정보기관 감시 속 드러나면 안 될 긴급부조

등록 2011.12.25 18:16수정 2011.12.25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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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서초동 법원 311호 중법정에서 열린 제 18차 공판에서 곽노현 교육감에 대한 검찰측 신문이 모두 끝났다. 검찰은 17차 공판에 이어 연 이틀째 꼬치꼬치 캐물었지만 사건개요의 큰 물줄기를 뒤바꿀만한 사안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동안 10여 명의 증인들이 나와 자신들이 겪고 느꼈던 진실을 털어 놓았다. 저마다 입장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지만 증인들 간의 철저한 크로스체킹을 통해 사건의 전모가 비교적 분명히 드러난 터다. 그동안 재판장(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 김형두 부장판사)은 수시로 검찰과 변호인들에게 "이미 답변이 이루어진 걸 왜 또 물어 보느냐"고 질책하곤 했지만 그 자신 역시  증인들에게 반복 질문을 거듭하곤 했다. 그 결과 검찰조서가 왜곡되거나 부풀려진 측면이 많다는 것도 드러났다.

이날 곽 교육감에 대한 검찰신문에서 비록 경천동지할 만한 새로운 사실이 드러난 것은 아니지만 가장 중요한 당사자인 그가, 사건이 생성되고 문제화되는 일련의 과정에서 정확히 어떤 처지에 있었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정황들이 좀 더 명확하고 디테일하게 보강됐다. 역시 관건은, 곽 교육감이 언제 어떻게 측근들의 단일화과정을 알게 됐으며(사전인지 여부),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박 교수에게 돈을 전달했느냐(대가성 판단여부)는 핵심사항들에 관한 것들이다. 

연 이틀간의 검찰신문, 더 명확해진 사건 개요

검찰은 곽 교육감이 지난해 5월 19일 자신의 회계책임자 이보훈씨와 박명기 후보의 선대본부장 양아무개씨가 만나, 최갑수 교수가 보증을 선 가운데 합의한 후보 단일화 과정에 대해 사전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입증하는데 실패했다. 곽 교육감은 후보 단일화 과정과 전제조건은 물론, 누가 단일화 발표 기자회견 자리를 마련했고 누가 그 장소에 가자고 했는지조차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곽 교육감이 단일화 과정에서 뭔가 있었구나 하고 어렴풋이 느낀 것은 10월에 이르러서였다. 검찰은 적어도 박 교수가 곽 교육감의 집무실로 직접 쳐 들어가 담판한 8월 19일에는 곽 교육감이 단일화 합의 과정의 전모를 알게 됐을 거라는 심증을 갖고 추궁했지만 이 역시 성공하지 못했다.

박 교수는 이날 처음으로 "뭐 약속한 거 없습니까"고 말을 꺼내더니 "제가 (경제적) 어려움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라고 처음으로 '경제적 지원' 이야기를 꺼냈다는 것이다. 그동안에도 몇 번 만나면서 '정책연대'니 '인사협의' 등을 화두로 뭔가 떼를 쓰는 것 같은 박 교수가 이해되지 않고 불쾌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던 곽 교육감은 그제서야 비로소 "단일화로 인해 (그럴리는 없지만) 경제적 어려움에 빠진다면 진영에서 보고만 있겠습니까. 나라도 나서서 돕겠습니다"라고 단일화과정에서 말했던 기억을 되살렸다. 검찰이 이-양 간 단일화 합의와는 별도로 이때 '포괄적 의미'의 경제적 지원을 약속한 것 아니냐고 주목하는 부분이다.


곽 교육감이 자신의 당시 발언은 전혀 그런 뜻이 아니었고 박 교수의 일방적 오해임을 지적하면서 두 사람 사이에는 고성이 오갔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박 교수가 "측근들에게 확인해 보라"고 했다는 증언을 들어 곽 교육감이 이때 조건부 단일화 합의 사실을 인지했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고 물었지만 곽 교육감은 "정황상 박 교수가 그런 말을 했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흥분상태였기 때문에) 그런 말을 들은 사실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곽 교육감이 단일화 과정에서 정말 자신도 모르는 무슨 일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든 것은 10월 8일 국정감사 때 모 국회의원으로부터 "(당신이 박 교수에게 돈을 주기로 했다는) 이상한 소문이 있다. 박 교수가 격앙되어 있다더라"는 전언을 듣고 비서실장을 통해 사실확인을 시켜 "절대 아무 일 없다"는 보고를 받은 후에도 박 교수가 여전히 앙앙불락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다.


곽 교육감은 당선인 시절 비서실장이었던 김윤태 교수에게 다시 한번 사실확인을 부탁한 결과 최갑수 교수가 보증을 선 가운데 이-양 간 합의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주변 사람들이 다들 입을 다무는 바람에 박 교수를 직접 찾아가 만났는데 박 교수가 화를 내면서 '그걸 몰라 묻나. 돈 주고받는 약속 있었다. 더 자세한 것은 이보훈이나 곽 교육감에게 물어 보라'더라"는 것이 김 교수의 보고내용이었다. "내게는 없는 약속이 박 교수에게는 있었다"는 것을 비로소 처음 알게 된 것이다. 10월 말이었다.

이후 최갑수 교수로부터 합의내용을 재확인한 일, 이보훈 씨에게 "사고 친 사람이 책임지고 결자해지하라"고 호통친 일, 이보훈 씨가 아닌 절친 강경선 교수에게 "박 교수의 오해와 원망을 풀어달라"고 부탁하게 된 사정 등은 각 당사자들이 지금까지 해 왔던 증언의 내용과 다를 것이 없었다. 다만 이보훈씨에게 질책을 하긴 했지만 "(이보훈이 설명하는) 양 아무개와의 합의가 '코미디'같은 부분도 있어서 실소를 금치 못 하기도 했다"는 말을 덧붙였다.

"실소 금치 못한 '코미디'같은 합의"

곽 교육감은 이후 강 교수의 노력으로 박 교수를 여러 번 만나 두 사람 간에 쌓인 '오해와 원망'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11월 20일 처음으로 '부조'를 생각하게 됐다. 박 교수의 어려운 사정에 대한 강 교수의 상세한 설명을 듣고서였다.

하지만 아직 결심까지는 아니었다. 두 사람 사이에 친밀감이 완전히 회복됐느냐가 부조의 전제라고 생각했다. "도와줘야 할 사람은 많지만 내가 도와 줄 사람은 많지 않다. 내게 (도움을 구하려) 찾아 온 사람인가, 그를 도와줄 만한 친밀감이 있는가"는 자문에 대한 자답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그는 돈준비를 시작했다. 

-언제 액수를 결정했나.
"12월 언제 쯤인데 정확히 기억할 수 없다. 난 2억 이상은 안 된다고 했는데 (독특한 사람인) 강 교수는 3억 이상 줘야 한다고 했다."

-돈은 어떻게 마련했나.
"처와는 무슨 일이든 허물없이 논의하는 사이다. 11월 말 처에게 '단일화과정에서 이보훈이 이렇게 사고쳤다. 강 교수 통해 알아 봤더니 박 교수가 굉장히 어렵다더라. (도와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는 건 아니다'라고 설명하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겠다고 하더라'고 했더니 처가 굉장히 흔들렸다. 처가 우리 사정으로는 현금을 1억 정도밖에 만들 수 없다고 했다. 매 주 2~3백만 원씩 인출했고 증권회사에 맡겼던 3천만원도 빼냈고 처가쪽으로부터 5천만 원을 지원받아 1억을 만들었다."

-나머지 1억 원은?
"서울대 법대 동창 170명 중 하나로부터 현금으로 빌렸다."

-그가 누군가.
"본인이 원치 않아 밝힐 수 없다."  
(재판장이 "다른 사람 곤란하게 할 필요 있겠느냐"며 진술거부권을 인정할 것을 권고)

-왜 현금으로 자금을 만들었는가.
"5월 19일의 단일화 과정은 불법이지만 박 교수를 도와주는 것은 불법이 아니라는 확고한 인식이 있었다. 하지만 노출이 되면 지금처럼 불필요한 소란이 일어날 수 있으리라는 우려가 있었다. 정보기관 등에서 내 전화도청은 물론 내 금융거래를 감시하고 있지 않았겠는가."

-박 교수로부터 돈 달라는 얘기는 없었는가.
"박 교수로부터 돈 달라는 말 직접 들은 적이 한번도 없다. 전혀 대가라든가, 뒷돈 거래가 아니다. 긴급부조다. 강경선과 김윤태로부터 '극단적 선택이 염려된다'는 말도 들었고 심지어 박 교수가 선거자금을 빌려 준 이들로부터 맞아 죽을 수도 있다는 소리도 들었다. 2억이라는 액수도 (합의과정에서 박 교수측 양 아무개가 자신의 집을 담보잡혀서라도 갚아야 한다고 했을 만큼) 급히 필요한 1억5천만 원을 기준삼은 것이다.

사퇴했기 때문에 그에게 돈을 준 것이 아니라 (막바지까지 버티다가) 사퇴하는 바람에 어려워진 사람에게 도움을 준 것이다. 후보 단일화로 한 사람은 교육감이 됐고 한 사람은 파락호가 됐다. 도움을 주지 않으면 내게 비난이 쏟아질 그런 특수관계가 생긴 것이다. 박 교수를 살리고, 진영의 도덕성을 살리고, 서울의 교육을 살리기 위해 도운 것이다."

박 교수, 진영의 도덕성, 서울 교육을 살리기 위한 부조

곽 교육감에 대한 재판은 이제 26일 변호인 반대신문과 29일 결심공판에서 검찰의 구형을 남겨 두고 있다. 재판장은 1월 6일에 판결을 내리겠다고 했다. 선고기일을 이렇게 빨리 잡은 것은, 새삼 공판기록을 검토할 필요도 없이 재판장이 이미 사건에 대한 판단을 심중에 내렸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이 유죄가 됐든 무죄가 됐든 대단히 어려운 결정이 될 것이다. 교육개혁이 이대로 당분간 멈추느냐 계속 전진하느냐의 문제 때문도 아니고, 정치시즌을 앞두고 진보·보수 양 측에 사활적 이해가 걸린 후보단일화를 위한 하나의 기준을 세우는 문제이기 때문만도 아니다. 

이 재판은 도덕에 반하지 않는 행위, 최소한 자신의 행위가 도덕에 반하지 않는다고 확신하는 두 인격자의 인생관과 철학마저 과연 법률에 위반될 수 있는가를 묻고 있기 때문이다.  
#곽노현 #공판 #선거법위반 #사전인지 #대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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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제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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