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미용실의 숨은 '무림 고수'를 만나다.

미용경력 20년을 걸어온 남자 헤어 디자이너의 삶

등록 2011.12.22 19:49수정 2011.12.22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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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그헤어'의 헤어디자이너 전인수(42) '보그헤어'의 원장이자 헤어디자이너인 전인수씨는 사진촬영을 요구하자, 가위를 들고 재치있는 포즈로 응답해주었다. 그렇게 찍힌 사진중에서 자신의 기사에 쓰일 사진까지 고르는 유머감각까지 보여주어 즐거운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보그헤어'의 헤어디자이너 전인수(42)'보그헤어'의 원장이자 헤어디자이너인 전인수씨는 사진촬영을 요구하자, 가위를 들고 재치있는 포즈로 응답해주었다. 그렇게 찍힌 사진중에서 자신의 기사에 쓰일 사진까지 고르는 유머감각까지 보여주어 즐거운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최규진

서울 마포구 도화동의 어느 한 아파트 단지 상가 내에 위치한 작은 미용실 '보그헤어'. 동네 어르신은 물론 어린 학생들도 드나드는 이곳은 번화가의 브랜드샵보다 다소 허름하고 심지어 초라해 보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손님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다.


미용실 안을 살펴보니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를 뒤로 묶은 헤어디자이너가 홀로 규칙적으로 가위를 놀리고 있었다. 뒷모습만 보니 영락없는 여자인데 알고 보니 남자다. 볼수록 신기해서 물어보니 게다가 미혼이다. 예사롭지 않은 느낌에 미용실 의자에 앉아서 그에게 머리를 맡겼다. 보그 헤어의 유일한 디자이너이자 동시에 원장인 전인수(42)씨의 사연이 궁금해졌다.

"대학에서 음악을 잠깐 했었는데 체질에 맞지 않았어. 밤무대도 뛰었는데 매일 밤낮이 뒤바뀌니까 너무 힘들더라고. 돈 벌자고 잠깐 한눈 팔아 응시한 미용사 자격증을 하루 만에 땄는데 오랫동안 묵혀놨어. 그러고서 군대에 갔는데 오히려 이발병을 하면서 생각을 고쳐먹었지."

전 원장은 부산에서 태어나 미용업계에 발을 들여 놓은 지 20년이 지난 프로 디자이너다. 지난 10년을 고향의 헤어샵을 전전하다가 3년 전부터 서울의 형과 함께 살기로 한 이후로 상경했다. 현재 자신의 이름을 내걸은 '보그헤어'는 지인의 소개로 찾은 자리라고 한다. 그가 처음 일을 배운 곳은 헤어디자이너들의 성지인 명동 마샬 미용실. 전 미용협회 회장인 하종순 씨에게 일을 배운 그는 학교나 학원 강단에도 여러 번 섰다. 연예인들도 많이 봤다는 말에 연예인 머리는 잘라보았느냐고 하니까 그땐 '스텝'이었다고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스텝' 다음에 '시아기(しあげ.끝손질, 마무리라는 일본어) 디자이너', '오리지널 디자이너가 있'고 실장이나 팀장이 있는 거지. 처음 '스탭'때에는 바닥부터 닦아야 돼. 아무나 머리 못 자른다니깐. 지금도 대부분 큰 샵에 가면 머리 잘라주는 사람들은 단골손님 빼고는 다 '시아기 디자이너'라고 생각하면 되. 이때는 나도 실수가 많았어. 싱글링(가위질)을 하다가 귀 한번 잘라봤지. 이제 일한지 20년이 됬는데 아직도 뒷통수를 자를 때면 신경이 바짝 쓰여."

귀를 건드리며 장난 섞인 웃음을 지어보이는 전 원장은 이내 쉬지 않고 다시 분주하게 손 을 움직였다. 그는 미용이 마치 수학공식과 같다고 한다. 십 만개나 되는 머리카락을 다양한 모양으로 꾸미는 게 정말 오묘하다고 설명한다. 그는 다시 손에 쥔 가위를 보여주며 이걸로 전 세계를 다갈 수 있는 게 이 일이라며 남다른 자부심을 보였다. 한편 남자 디자이너로써 미용계에서 일하는 것에 대해서도 누구보다 긍정적이었다.


"아주 힘들지. 아직도 7:3정도로 여자가 많아. 그래도 미용업계에서는 서로 많이 돕는 편이야. 어디 안힘든일 있겠어?"

그렇다면 그처럼 경력과 실력을 모두 겸비한 베테랑 헤어 디자이너가 번화가에 규모가 큰 미용실을 열지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돈이 있으면 누구나 브랜드의 옷을 사고 싶은 법이라며 오히려 대형샵을 선호하는 손님들을 선입견에 비유했다. 그는 이러한 선입견에 대해 오히려 동네에 숨은 실력 좋은 디자이너들을 추천했다.


"미용이 장래성은 있어. 자기 기술만 있으면 되니깐. 길거리의 대형샵이나 브랜드에 가면 대우는 좋지. 그치만 어딜가나 돈벌이는 힘들지. 결국 자기가 만족하기 나름이야. 나만해도 내 성격에 못이겨서 여러번 짐싸들고 나왔어. 지금은 더 큰 자리로 옮길 욕심도 없어. 그냥 딱 지금처럼 내가 하고 싶은 머리만하다가 더 늙으면 고향에 가서 농사지으면서 살 거야."

전 원장의 시원한 손놀림으로 머리까지 감고 나니 머리가 제법 짧아져있었다. 그는 해맑게 웃으며 기자에게 머리가 마음에 드는지 물어봤다. 그 어느 유명 헤어샵에서 자른 것보다 훨씬 잘나온 머리에 두말할 것 없이 만족했다.
#헤어디자이너 #미용 #동네미용실 #보그헤어 #헤어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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