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학생인권조례 재의검토라니요?

[주장] 학생인권 지키는 건 우리의 책무

등록 2011.12.22 18:27수정 2011.12.22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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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교육청이 학생인권조례 공포를 앞두고 재의검토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교육자치 시대라고 하지만 교육감의 권한은 보기보다 크지 않아서 진보교육감의 정책들은 이래저래 트집을 잡히거나, 상위법을 들어 정책들이 무산되거나, 훼방을 받는 게 작금의 상황입니다. 경기도 평준화, 공모교장제, 서울학생인권조례가 다 그런 처지입니다. 학생인권조례가 재의요구라는 왜곡된 여론에 휘둘리지 않고 올곧게 학생인권 최후의 보루로 남길 수 있도록 하는 일은 우리 모두의 책무입니다.

제 삶에서 학생인권은 소중한 가치를 지녔습니다. 획일주의적인 학교 문화와 불화했던 아이를 키우느라 눈물 콧물 다 흘렸던 지난 10년의 기억도 생생하고 나 자신도 중학교 때부터 여고까지 이어지던 교사들의 모진 체벌과 폭력에 진저리를 쳤기 때문에 학생 인권은 더욱 절실했습니다.

학생인권조례는 진보교육감의 정책공약이었기 때문에 곽 교육감이 해결해야 할 숙제였습니다. 그러나 곽노현 교육감의 서울시 교육청은 출범한 지 1년 반이 지나도록 서울학생인권조례에 대해 간간히 변죽만 울릴 뿐 진도를 나가지 못했습니다. 솔직히 시민운동단체들이 주민발의로 1년여 시간을 끄는 것도 한편으로는 답답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곽 교육감 구속사건이 터졌고 그 이후 교육청과 시의회는 소리 소문 없이 끙끙 몸살을 앓았습니다. 진작 진행되었어야 할 일인데 차일피일 미루다가 교육감이 구속되자 학생인권은 구박덩어리가 되어 여기저기 굴러다니면서 원안에서서 대안으로, 대안에서 원안으로 표류하고 있었습니다.

조례안은 모두 51개 조항, 1개 부칙으로 구성됐습니다. 담긴 내용은 임신·출산·동성애 등에 의해 차별받지 않을 권리, 양심과 종교의 자유 보장, 집회의 자유 보장 등입니다. 이를 두고 기독교계와 보수 진영이 독소조항이라고 지적합니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어른들도 가끔은 실수를 합니다. 십대들도 실수를 통해 세상을 배웁니다. 십대 미혼모 중에는 이른 출산으로 크게 깨우친 후 아이와 자신을 위해서라도 학교를 마치고 싶어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또한 성정체성에 확립시기에 십대가 느끼는 혼란을 동성애라는 어른들의 성애(性愛)적 잣대로 파악하면 상처를 받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양심과 종교의 자유보장, 집회의 자유 보장은 역사 속 해방기에, 전쟁기에, 민주화 정착시기에 많은 어린 학생들이 자유와 양심 그리고 국가의 위기를 구하려고 스스로 일어나 학생운동으로, 학도병으로 싸웠던 모습으로 이미 존재해 있습니다. 이들을 모두 독소조항이라고 손가락질 할 수 있습니까?

지난 3개월 동안 제 핸드폰에는 서울학생인권조례제정을 반대하는 문자 2000통이 쌓여갔습니다. 핸드폰 메시지함은 자주 마비되었습니다. 그 문자 메시지들은 '학생인권조례는 초등생임신허용조례'라느니, '아들이 남자며느리를 데려오면 어찌하나?'까지 다양한 내용입니다. 그런데 조례가 통과되자 이상할 정도로 삽시간에 자취를 감추어 버렸습니다. 이 상황을 겪으면서 한국에서 학생이라는 위치가 얼마나 존재감이 없는지 절감했습니다. 현재 십대의 사망원인의 첫 번째 이유가 자살입니다. 한국의 십대들의 우울과 짜증은 질풍노도의 시기의 생리적 이유보다도 사회적 분위기로 더 증감되어 아이들을 코너로 밀어 넣고 있습니다.

학생인권조례는 기성세대들로부터 십대를 보호하는 방패막이의 기능을 하게 되리라는 예상을 합니다. 교사와 학생을 반목하게 하는 학생 두발 규제를 할 수 없으며, 긴급한 경우가 아니면 소지품 검사를 할 수 없습니다. 논란이 된 문안 중 중요한 내용은 다 들어간 학생인권조례입니다. 학생들을 어떠한 이유로도 차별할 수 없다는 원안대로 패키지 항목(성별부터 성적까지 26개 항목)이 주민청구안 원안대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서울학생은 앞으로 경쟁교육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학교는 과도한 선행학습을 실시하거나 요구하여서는 아니됩니다. 교육감은 휴식권을 보장하기 위해 교육과정 외에 교육활동을 제한할 수 있습니다. 서울학생은 다양한 문화 활동을 누릴 권리를 가지기 위해 행재정적 지원을 받을 권리를 가집니다. 학생은 소질과 적성에 따라 합당한 학습을 할 권리를 가집니다.

학생들 중에는 동그란 성격의 아이도 있고 세모난 성격의 아이도, 네모난 성격의 아이도 있습니다. 그 아이들에게 획일적으로 만들려는 모든 시도는 폭력입니다. 지금은 대학졸업반인 딸아이가 사춘기시기에 세모성격을 동그라미 규율인 교복, 두발, 교칙에의 적응으로 힘들어하면서 이렇게 일기에 쓴 적이 있습니다. "소수학생을 위한 매뉴얼"이 필요하다고 말입니다. 학생인권조례는 소수학생들의 인권 즉 학교에서의 생활권을 보호하면서 모든 학생들이 민주시민으로서의 초보적 역량을 배우는 매뉴얼이 될 예정입니다.


서울학생인권조례는 서울학생살림조례입니다. 이제 첫 단추를 끼웠지만 가야할 길은 멀기만 합니다. 십대들에게 미리 일러두고 싶습니다. "너희가 그토록 원하던 자유는 사실은 책임이며, 너희들이 이를 감당하지 못하면 너희의 인권 문제는 다시 미궁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사실을 꼭 잊지 말라"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학부모님들과 교사들 모두는 아마 초반에는 이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지 못해서 허둥댈 것입니다. 그 때는 학창시절 어른들의 작은 실수로 상처받았던 자신과 친구들을 기억합시다. 학교는 정글 같은 경쟁사회 속에 마지막 피신처이고 보루가 되어야 합니다. 자유가 서투른 아이들을 혼내기 이전에 자유라는 방패를 어떻게 해야 바르게 사용할 수 있는지 인생의 선배로서 조언해줍시다. 학생인권조례가 재의라는 왜곡된 여론에 휘둘리지 전 자신의 학창시절을 한 번 돌아보고 자라날 우리 아이들의 학생인권을 아이가 숨쉴 최후의 보루로 남겨야하는 책무를 잊지 맙시다. 3.1 독립운동을 이끈 유관순언니는 고등학생 나이였습니다. 학생들의 가능성을 크게 열어둡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김명신씨는 서울시 교육위원입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김명신씨는 서울시 교육위원입니다.
#서울학생인권조례 #재의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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