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조문 사절 방북에 대한 관견

[주장] 정부의 불허 방침은 짧은 식견의 결과

등록 2011.12.21 10:12수정 2011.12.21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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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든 싫든 한반도의 반을 통치하던 사람이 떠났다. 많은 사람들이 의외로 받아들이는 한 통치자의 죽음이다. 남한과 삶의 환경이 다르고 사회 제도가 다른 북한이어서 그런가? 지도자의 죽음을 애통해 하는 평양의 분위기가 뉴스를 통해 전달되고 있다. 이렇게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도 많지 않을 것이다.  

 

남한에서도 그의 죽음을 보는 눈이 두 가지로 나뉘는 것 같다. 분명히 해 두어야 할 것은 김정일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관점에서 나뉘는 눈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죽음은 한 사람이 이 땅에서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가 선정을 베풀었건 아니면 악정을 베풀었건 죽음 앞에 한 영혼이 불쌍하게 생각된다는 사실이다. 거기에서 김정일의 죽음을 되돌아보자는 것이다.

 

그의 죽음 이후 50여 시간 발표 지체를 두고도 말들이 많다. 원래 죽음 앞에는 이러쿵저러쿵 참새 소리를 내고 싶은 것이 사람의 심리이다. 어떤 말을 하든 죽은 자는 말이 없기 때문에 더 그런 것 같다. 어제(20일) 한 할머니와 대화를 나누었다. 아흔이 넘은 노인이지만 살아온 경륜 못지않게 많은 생활의 지혜도 갖고 있는 분이다.

 

"김정일의 죽음에 대해 말들이 많은 것 같습니더. 여러 가지 추측들이 난무하고 있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더. 이틀 늦게 그의 죽음에 대한 발표를 미룬 것은 혹 그가 살아날까 봐 그런 게 분명합니더."

 

역시 인생을 오래 살아온 노인다운 생각이다. 의술이 발달하기 전엔 죽었다고 치부하던 사람이 깨어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전통 상례(喪禮)가 3일장을 하는 것도 깨어날 가능성을 고려한 결과라고 한다. 정치적 지도자의 죽음이 타살의 가능성이 많지 않으면 죽음 그 자체를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사자(死者)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싶다.

 

북한의 최고 통치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죽음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도 좀 모호하다. 조문 사절의 방북을 불허하되 현대그룹과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만은 예외로 하겠다는 것이다. 김정일의 죽음이 한 집안 또는 한 단체의 일이 아니라 한 국가(북한을 국가로 인정한다면)의 상사(喪事)라고 할진대, 정부의 발표는 아주 유치한 결정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정부 결정을 두고 보수 세력 일각에서는 '절묘한 선택'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은 것 같은데, 그건 맞다. 그들은 정부의 결정에 긍정적인 반응으로서 '절묘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면, 나는 부정적 입장에서 '절묘한 선택'이라고 말하고 싶다. 예외를 두는 국가 정책은 문제를 야기하기 쉽다. 법도 정책도 만인 앞에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은 현대 사회의 상식에 속한다.

 

이번 조문 사절도 예외가 되어서는 안 된다. 대북 정책에 대한 보수 정부의 기조대로라면 방북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 일관성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업상 관계가 밀접하다는 이유로 현대그룹의 조문을 허락한다는 것이며,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때 조문 사절을 보내왔다는 것을 내세워 이희호 이사장의 방북을 허락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 결정이다.

 

그렇다면 노무현 전 대통령 관계자들도 거론하며 조문 사절로의 방북을 허락해야 옳았다. 최소한 그들의 논리적 잣대를 들이댄다고 해도 말이다. 그런데 노무현재단의 방북은 불허한다는 방침을 정했다고 한다. 나는 죽음 앞에는 누구나 겸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또 망자(亡者)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앞으로의 관계를 개선시키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정일 조문은 예외 없이 허락하는 것이 정부의 통 큰 결정이 될 수 있었다. 한 개인의 죽음이 아닌 남한의 최고 파트너였던 북한 지도자의 죽음 앞에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북한의 김정일 장례위에서는 이미 외국 조문 사절을 받지 않겠다고 발표해 놓은 상태이다. 우리가 조문 사절을 허락한다고 해도 방북의 성사 여부는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로선 최대한의 예를 갖추었으되 북한 측에서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결과는 정부의 생각대로 귀결되고 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경륜이 필요하고 지혜가 요구된다. 현 정부는 그런 것이 많이 부족한 것 같다. 내가 아는 선배가 있다. 과거 한 때 사회운동을 함께한 선배 동지이다. 그는 자의식이 강한 사람으로 어디를 가든 문제를 만드는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그 문제 제기가 조직에 순기능 역할을 할 때도 있었지만 역기능으로 작용할 때가 훨씬 더 많았다. 그래서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을 그 선배를 일컬어 '트러불 메이커'라는 별칭을 붙여 주었다.

 

자연 그와 거리를 두는 사람들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를 싫어하면서도 멀리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한편 바지런하기로도 유명했다. 아무리 바쁜 와중에도 새벽 5시면 자전거를 타고 지역을 누비는 열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한 번 당선되기도 어려운 국회의원을 네 번이나 당선될 수 있었다. 그것도 서울의 지역구에서. 그런 열정보다 더한 장점이 그에게 있었다. 그가 아는 사람의 경조사엔 빠지지 않고 꼭 참석해서 축하와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는 것이다. 그런 행위는 그를 외면할 수 없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그런 것을 두고 그 사람의 큰 자산이라고들 했다.

 

왜 내가 김정일의 죽음 앞에 이 선배의 예를 드는가 하면, 관계가 서먹했던 사람도 경조사 시 참석해서 함께함으로 서먹했던 관계가 개선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개인의 관계도 이와 같은데 단체와 단체의 관계 나아가 국가와 국가의 관계는 더 말할 것이 없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정부의 김정일 조문 사절 방북 불허는 대단히 짧은 식견의 결과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김정일은 갔더라도 남북 관계는 지속될 것이다. 경색 국면을 풀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친 것 같아 안타깝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거니와 이번 조문 사절 방북 문제는 김정일에 대한 좋고 나쁜 감정을 초월해서 생각하는 것이 옳았다. 그의 사후 남북 관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접근해야 했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한반도, 우리에게 주어진 절체절명의 과제를 풀 수 있는 고리를 스스로 포기한 격이 되고 말았다. 죽음은 소설의 좋은 소재이다. 죽음을 계기로 남아 있는 사람들이 화해하는 줄거리는 우리를 따스하게 만든다. 나는 남북 관계에도 이런 마음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2011.12.21 10:12ⓒ 2011 OhmyNews
#김정일 사망 #조문사절 방북 불허 #현대그룹 #이희호 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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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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