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준 참여연대 공익제보지원단장참여연대 창립 때부터 공익제보자 지원사업을 해온 김창준 변호사
참여연대
오늘 만날 주인공은 참여연대 창립 때부터 공익제보자의 외로운 투쟁에 동행하며 그들의 고통과 상처를 위무해왔던 김창준 변호사이다. 그의 참여연대 내 공식 직책은 공익제보지원단장. 그가 활동하던 부서의 이름이나 그에게 부여되었던 타이틀은 조금씩 바뀌었을지 모르겠지만, 그는 참여연대에서 활동한 15년 내내, 공익제보지원운동에만 몸담아왔다.
김 변호사에게 처음 참여연대 활동을 권유했던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금도 그거 하냐"며 우스갯소리를 한단다. 참여연대부터 시작해서 여러 사회단체를 만들고 떠나고 했던 박 시장에게 김 변호사는 놀림의 대상이기도 하겠지만, 놀라움의 대상이기도 할 게다.
"진작 다른 것도 할 수 있었는데 그걸 안 한 이유는 제가 생업이 있고 회사 대표니까, 사실 이거 하나만 하는 것도 버겁다고 할 수 있지요. 딴 데 눈길을 돌릴 여유가 없었던 거예요."공익제보운동에 대한 남다른 소신을 기대했던 우리로서는 그의 대수롭지 않은 반응이 살짝 머쓱하다.
그러고 보니 그는 인생 마디마디에서 중요한 매듭이 지어졌을 법한 일들에 대해서 대수로이 여기지 않는 듯하다. 법대 진학이나 참여연대와의 인연, 심지어는 최근에 사재 1억 원을 '공익제보자를 위한 의인기금'에 쾌척한 일을 설명할 때조차 말의 다과로 자신의 의중을 드러내려 하지 않았으며, 수사를 동원해서 의미를 치장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간결하고 담백한 그의 화법은 단지 대화의 기술만이 아닐 것이다.
그의 기름지지 않은 답변을 처음 들었을 때는 겸손한 체하는 게 아닐까 의심했다. 하지만 대화 말미에선 그가 정말 자신이 하는 일이 시대의 공기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도통 관심이 없다는 걸 받아들이게 되었다. 누가 밀고, 당기지 않아도 그는 뚜벅 자신의 길을 갈 뿐이다.
참, 그는 자신이 체질적으로 한 우물을 파는 성격인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법조계에서 해상법 전문가로 통한다. 그가 대표로 있는 법무법인 세경은 해운분야에서 1등급 로펌으로 평가받았다. 유수한 법률정보제공업체가 공정거래, 금융, 노동, 조세 등 14개 분야 경쟁력을 분석한 결과인데, 김앤장이나 광장 등 변호사가 수백 명 있는 대형로펌이 아닌 곳은 세경이 유일하다.
하지만 한 우물을 파는 성격만으로 전문가가 되는 것은 아닐 터. TV와 골프에 시간을 뺏기는 대신 책을 읽고 공부한다. <복합운송주선업자의 법적 지위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학위를 받은 후에도 새로운 연구 결과를 부지런히 발표하고 있다.
무엇보다 큰 고통,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1994년 창립 때부터 '내부비리고발자지원센터'를 설립하며 공익제보자지원 활동의 첫 발을 내딛었던 참여연대가 1996년 종합적인 반부패운동기구인 '맑은사회만들기본부'를 통해 본격적인 공익제보지원운동을 펼쳤으니, 그의 참여연대 활동의 역사는 바로 한국 공익제보자지원운동의 역사가 될 것이다.
'조직 내의 누군가가 불법, 부정한 방법으로 정부 또는 국민을 속이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에 항의하거나 거부하다 보복을 당하고 마는 사람들'을 부르는 사회적 용어가 내부비리고발자에서 공익제보자로 바뀐 십수 년 동안 그는 무엇을 보고 느꼈을까?
"공익제보자라고 해서 뭐 특별한 사람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구요. 그냥 우리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보통사람, 그중에서 약간 선량한 사람이라는 게 개인적인 솔직한 소감. 다만 그분들이 다른 선량한 분과 차이가 있다면 불의와 타협하는 데 미숙하다는 것이지요. 적당히 타협하고 넘어가지 못하는, 정의감이 조금 남다른 분들이지요.혹자는 공익제보 목적이 사리사욕이 아닌가 하는 오해를 많이 하시는데 그것은 공익제보로 피해를 보는 반대 측에서 만든 흑색선전에 가깝다고 생각하구요. 공익제보 하신 분들이야말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모범적인 시민이라고 생각해요."공익적 내부고발 보호와 보상을 규정한 부패방지법이 제정된 지 10년이나 되었고, 올해는 공익신고자보호법까지 제정되었지만, 법원 판결은 여전히 공익제보자에게 우호적이지 않다. 올해 3월에도 엘지전자 납품 관련 비리를 회사 감사실에 제보한 정국정씨를 해고한 조치에 대해 대법원은 정당하다고 판결하였다. 김 변호사는 '내부고발에 대한 뿌리 깊은 부정적 인식'을 지적하였다.
"한국 문화에서 보자면 굉장히 드문 사건이잖아요. 전통적인 농경시대의 미풍양속을 생각하면 이것들 나쁜 놈 아냐? 이런 생각이 들겠죠."그는 우리 사회의 부패가 구조적이고 문화적이라는 데 특색이 있다고 진단한다.
"내부 고발을 제일 아프게 느끼는 사람은 그 고발 대상 조직의 장입니다. 근데 그 장은 인사권이 있잖아요. 그 조직의 인사권 내에 있는 사람들 모두 내부고발자의 적이 됩니다."한솥밥을 먹었던 동료와 선후배들은 부패의 그물망으로 작동한다.
"친구들이 소주 한잔 하는데 따라와라 하면 따라가죠. 뭐 큰 죄는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 나중에 '너 그때 같이 먹었잖아' 하는 식으로 먼지를 털어요. 별거 아닌 거여도, 재판할 때 그런 자료가 막 쌓여 있어요. 100명을 모으면 100건의 먼지가 쌓여요. 법이란 것도 내부고발 자체만 가지고 보지 않아요. 공익성, 진실성 다 평가하는데 그렇게 나쁜 자료를 많이 모아놓으면 그 과정에서 아주 나쁜 동기가 만들어져요. 조직을 모반한 것이 되니까 판사들이 '이 사람을 무죄로 하면 안 되겠네' 할 수 있죠." 공익제보자관련 소송에서 그나마 전향적인 하급심 판례가 번번이 상급심 법원에 의해 번복되고 만 이유는 '조직의 유지, 직원들 사이의 융화 등의 가치가 내부고발자가 추구하는 정의로운 사회보다 우월하다는 판단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부패문화'에서 포박당하지 않을 재간이 없다. 때문에 그는 다시금 강조한다.
"공익제보자는 제 경험에 비춰볼 때 우리 사회에서 시대를 잘못 만나 엄청나게 고생하시지만, 정말 시대의 영웅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를 희생해서 사회 전체 이익을 위해 자기를 버렸다는 점에서 너무나 훌륭하신 분들인데, 다만 그분들이 현실에서는 패배자입니다. 그게 우리 공익제보자의 현실입니다."의인기금 조성한 또 한 명의 '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