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총 20권 중 제18권 겉그림
휴머니스트
시아버지 죽어 상복 이미 입었고갓난아기 배내물도 마르지 않았건만삼대의 이름이 군적에 실렸다. 달려가 억울함을 호소하려 해도범 같은 문지기가 버티어 섰고이정이 호통하며 단벌 소만 끌고 갔네남편 문득 칼을 갈아 방안으로 뛰어들더니 붉은 피 자리에 낭자하여라스스로 한탄하네. 아이 낳은 죄로구나-정약용의 '애절양(哀絶陽)'해석
저자가 정약용의 '애절양'을 풀이해 그림과 함께 본문 중에 넣은 것이다.
이즈음 어린아이에게 거두는 '황구첨정(黃口簽丁)'과 '백골징포(白骨徵布)가 일반화 되었다.억울함을 호소하러 갔다가 되레 마지막 남은 소마저 빼앗기고…, 아이 하나 더 낳게 되면 4명이 군적에 오를 판이다. 스스로 칼을 갈아 아이 낳는 근원을 잘라내고 말았다는 내용이다. 당시의 수탈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
순조는 친정과 함께 세도정치의 핵심세력인 안동 김씨를 견제하고자 조만영의 딸을 세자빈으로 삼는 것을 계기로 풍양 조씨를 중용하여 새로운 정치세력을 결집하는 등의 노력을 한다. 그러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고 만다. 어린 헌종을 두고.
헌종의 나이 8세. 순원왕후가 헌종이 15세가 될 때까지 7년간 수렴청정을 하게 된다. 순원왕후는 조선 역사상 유일하게 두 번이나 수렴청정을 한 인물이다. 헌종이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죽어 절손의 위기에 처하자 순원왕후와 외척들은 왕족의 자손이나 끄트머리 자손으로 강화도에 숨죽이며 살고 있던 원범을 데려다 즉위 시키고(철종), 6년간 수렴청정을 하게 된다.
순원왕후는 안동 김씨 출신이다. 그럼에도 친척인 김조근의 딸을 헌종의 비로 책봉하고 철종의 비도 김문근의 딸, 즉 안동김씨 집안에서 맞이한다. 이처럼 몇 대에 걸쳐 왕비를 배출함(?)으로써 안동김씨의 세도정치는 수그러들 줄 모르고 왕권을 압도, 헌종을 거쳐 철종 대까지 계속된다.
세도정치가 극에 달했던,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제18권의 시대적 배경 그 왕인 헌종과 철종, 그리고 순조는 우리에게 대체적으로 무능력한 왕으로 인식되고 있다. 정순왕후와 순원왕후의 수렴청정의 그늘에서 외척인 안동김씨에게 끌려 다니며 하라는 대로 그대로 해야만 했던 꼭두각시처럼. 특히 철종은 아이들의 동화에서 일자무식 왕으로 종종 그려지기도 했었다(어린시절에 읽었던 책들을 떠올려 보건데).
그런데 정말 순조를 비롯하여 헌종과 철종은 안동 김씨의 꼭두각시에 불과했을까? 정말 그들은 허수아비와 같은 무능한 왕이었을까? 조선시대 사대부 중심의 정치 체제는 과연 합당한 것이었나? 조선의 오백 년은 과연 누구를 위한 역사였을까? 순조가 중용한 풍양 조씨 세력은 대체적인 평가처럼 안동 김씨의 가장 큰 적수였을까? 아님 혹자들의 말대로 함께 나눠먹는 사이였을까?
예상했던 대로 헌종·철종 편은 <실록>의 기록이 부실해 내용을 엮어내기가 어려웠다. 이전까지는 적당한 분량의 한 권을 만들기 위해 처음 잡은 콘티에서 많이 덜어내야 했지만, 이번 18권은 덧붙일 게 없을까를 고민해야 했다. (중략) 부실하기 이를 데 없는 기록에서 그나마 헌종이 안동 김씨에게 제대로 맞서보려 했다는 것과 철종이 꽤 안목과 자질을 갖춘 인물이었음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수확이었다. - 작가 후기에서개인적으로 역사에 관심이 많다. 그런데 이 책의 시대적배경인 헌종과 철종(혹은 그 시대)에 대해 아는 것은 거의 없었다. 세도정치와 삼정문란 등에 대해서만 알면 된다 싶었다. 권력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과 권력 따라 엎치락뒤치락하는 역사인물들이 워낙 많아 알려고 들면 복잡하고 헷갈려 알아가는 것을 생략하곤 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지난 몇 달 동안 인터넷 서점에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시리즈가 눈에 익었다. 역사에 대한 관심만으로 언젠가는 읽으리라. 그렇게 접한 것이 제18편.
저자는 더 이상 알기를 스스로 생략해 버리곤 했던 헌종과 철종의 시대를 쉽고 재미있게, 그리고 명확하게 이야기해주고 있지 않은가. 27대 왕을 통틀어 가장 많이 모르면서도 알고 싶어 하지 않았던 헌종과 철종의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이제까지 우리에게 알려진 것과 전혀 다른 안동 김씨에게 당당하게 맞서는 헌종과 출발은 비록 미미했으나 나름대로의 안목과 왕의 자질을 갖췄던 철종의 백성들을 향한 고뇌를 말이다.
이 만화를 그리며 염두에 둔 나름의 원칙이 있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정치사를 위주로 하면서 주요 사건과 해당 사건에 관련된 핵심인물들의 생각과 처신을 내용의 중심으로 그린다. 둘째, <실록>의 기록을 위주로 하면서 학계의 최근 연구 성과를 적극 차용하고 필자 스스로도 적극적으로 해석에 개입한다. 셋째, 성인 독자들을 주된 대상으로 삼되, 청소년들과 역사에 남다른 어린이가 보아도 무방하게 그린다. - 저자의 말에서 이 만화가 <실록>에 우선하고 있는 터, 그런데 왜 이제까지 헌종과 철종은 무능력한 왕으로 그려지곤 했을까. 책 덕분에 헌종과 철종의 새로운 면을 알게 된 것은 여간 큰 수확이 아니다. 혹여 나처럼 헌종과 철종에 대한 누군가의 잘못된 평가에 치우쳐 그들이 무능력한 왕이라고 생각한다면 꼭 이 책을 읽어 봤으면 좋겠다.
시리즈로 읽어도, 나처럼 한 권만을 읽어도 그 자체로 이해할 수 있도록 쓴 것이나, 뒷부분에 조선시대의 전체적인 정치적 흐름이나 사대부들의 정체성 혹은 역할, 당시 중국의 상황이었던 아편전쟁, 헌종실록과 철종실록 연표를 덧붙임으로써 역사적 이해를 돕는 것도 이 책의 장점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