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7일 오후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 서울본부는 발족식 및 토론회를 열었다.
최인성
세상에는 참 애매한 것들이 많습니다. 일단 저부터 좀 애매한 인간입니다. 제 주변에 있는 1993년생 동갑내기 친구들처럼 저 역시 19살의 청소년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3은 또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초·중·고 시절을 12년에 걸쳐 마치지만 저는 그냥 10년 4개월 만에 끝내 버렸습니다. 학교에서 너무 상처를 많이 받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고등학교 졸업장이 없지만 내년에는 대학생이 됩니다. 그것도 세상에서 말하는 명문대. 이렇게 애매한 나의 정체성을 정리해줄 단어들이 있습니다. 자퇴생, 검정고시생, 탈학교 청소년, 예비 대학생, 혹은 잉여.
대학생활을 코앞에 두고 있는 제가, 이제는 '고딩'이라는 단어를 쓰기엔 조금 어색해진 제가, 나이 앞에 '1'이라는 숫자를 달고 다닐 날도 20일밖에 안 남은 제가 지금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바로 '학생인권조례'입니다.
가방끈도 짧은 데다, 글 쓰는 재주가 부족한지라 글의 앞부분만 읽고 '뒤로 가기' 버튼을 누르실 듯하여,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딱 한마디를 먼저 하겠습니다. '서울학생인권조례를, 원안 그대로, 훼손 없이, 당장 제정하라.'
여기까지만 읽어 주셔도 참 좋겠습니다. 이 잉여의 19살 청소년이 왜 이를 악물고 학생인권조례 이야기를 시작하는지 궁금하다면 조금 더 머물러 주셔도 좋습니다. 학교에 다녀 본 경험이 있다면, 그때를 기억하며 글을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그 시절이 행복했다면 왜 행복했는지를 떠올리며, 그 시절이 불행했다면 왜 불행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곱씹으며 제대로 된 서울학생인권조례의 제정을 위해 함께 고민해 주시기 바랍니다.
인권조례에 담긴 9만7702명의 마음여기에 9만7702명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난 여름 서울시민 1%의 서명이 담긴, 서울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요구하는 주민발의 청구인 명부를 서울시교육청에 제출했습니다. 그중 유효판정이 난 서명자의 수가 9만7702명이었습니다. 무효 서명까지 더한다면 10만여 명이 넘는 시민들이 서울학생인권조례의 제정을 위해 기꺼이 함께 했습니다.
'서울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안'은 전국 최초의 학생인권조례인 '경기학생인권조례'가 놓친 부분까지 세세하게 챙기며, 국제인권기준과 국제법까지 꼼꼼하게 검토하여 완성된 결과물입니다. 조례를 적용받는 학생의 범위를 확장시키는 것은 물론, 제한요건의 삭제 등으로 '경기학생인권조례'보다 한 발 더 진보한 조례안이 탄생했습니다.
'서울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안'이 학생인권보장의 유일한 해결책이 되지는 못하겠지만 첫 제도적 성과라는 의미가 큽니다. '학생인권조례' 없이는 학생인권을 이야기하는 것조차 힘든 부끄러운 세상에서,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학생인권조례안입니다.
그런데, 낡은 교육의 변화를 원하는 10만여 명의 서울시민들, 오랫동안 학생인권을 위해 땀 흘려온 사람들, 교육주체들, 그리고 130만 서울 청소년들이 너무나도 애타게 기다려 왔을 그 서울학생인권조례가 반쪽짜리로 전락할 위기에 놓였습니다.
저는 너무나도 당연한 말들을 나열해 놓은 조례안이어서 고개가 끄덕여지는데 다른 이들은 그게 아닌가 봅니다. 63개 보수 교원·학부모·시민단체로 구성된 '학생인권조례 저지 범국민연대'는 지난 13일, 서울학생인권조례의 부결을 요구하며 서울시의회에 청원서를 냈습니다.
게다가 서울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안 제1절 6조 '차별받지 않을 권리' 부분에서 성적 지향과 임신 또는 출산 항목을 삭제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옵니다. 이 조항을 삭제하지 않는다면 서울학생인권 주민발의안은 오는 16일에 있을 교육상임위원회 통과가 불투명하고, 그렇게 되면 시의회 본회의(19일)에 상정조차 될 수 없습니다.
너덜너덜해질 인권조례, 상상하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