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대야에 담긴 숯불이 새벽의 추위를 녹여 줍니다.
임윤수
정갈한 반찬, 싱싱한 과일, 맛깔스런 떡들이 깔끔하게 차려져 있습니다. 널찍한 접시에 밥도, 반찬도 양껏 가져다 먹을 수 있었습니다. 식탁 여기저기에 맛있어 보이는 삶은 고구마도 있었습니다. 차도 함께 준비돼 있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국을 끓이고, 밥을 짓는 가마솥 아래 장작불이 이글거리며 타고 있습니다. 찌그러진 대야에 담긴 숯불이 따뜻해 보입니다. 타고 있는 화덕에서 꺼낸 숯불을 찌그러진 대야에 담아 화로로 활용하고 있는 정겨운 모습입니다.
제물 없는 제단에 산해진미 진수성찬의 추모하는 마음들 차려져봉녕사 경내를 몇 바퀴 돌았습니다. 대설을 하루 앞둔 한겨울이건만 여기저기서 꽃이 보입니다. 개나리도 보이고, 진달래도 보이고, 국화도 보입니다. 여느 영결식장과는 달리 묘엄스님의 제단에는 제물(祭物)이 차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영정과 위패 그리고 생화만 몇 채반 가지런하게 차려져 있었을 뿐, 사탕 하나 대추 하나 보이지 않았습니다.
조금 더 있으면 차려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묘엄스님의 제단에는 꽃 외에 어떤 제물도 차리지 않았습니다. 아마 제물을 올리지 않는 제단은 전무후무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제물이 없었다고 제물을 올리지 않은 것은 아닐 것입니다.
회자정리와 생자필멸, 애별이고를 실감해야 하는 제자, 도반 스님들의 애틋한 마음. 이런저런 인연으로 묘엄스님의 원적을 추모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모이고, 향기로운 꽃으로 장식까지 했으니 이것이야말로 산해진미에 진수성찬의 제물이 아닐까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