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 소리 나는 통장...살살 녹는 음식

[연재소설 - 하얀여우 6] 서른다섯 강사 한달 수입 '천만 원'

등록 2011.12.02 15:08수정 2011.12.13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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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날에는 사무실 총 책임자라는 사람이 강의를 했다. 말쑥한 차림이었고 나이는 30대 중반쯤 돼 보였다. 오자마자 통장을 꺼내서 보여 주었다. 동그라미를 계속 세다 보니 말로만 듣던 '억'이었다.  

"보셔서 아시겠지만 제 통장에는 한 달에 약 천만 원 정도가 입금됩니다. 제 나이 이제 겨우 서른다섯입니다. 이 나이에 어떻게 제가 이렇게 큰돈을 벌겠습니까. 바로 거상산업이라는 회사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는 일생 동안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세 번 온다고 합니다. 저는 그 첫 번째 기회를 과감하게 잡았습니다. 용기 있는 자만이 세상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지금 기회가 온 것입니다. 믿음을 가지십시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 시작해도 됩니다. 시작이 반입니다."


수억 원이 들어있는 통장을 보고 하마터면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욕심이 났다. 어쩌면 나도 저 사람처럼 성공해서 말쑥한 신사가 될 수 있을 것이란 상상을 잠시 했다. 하지만 이내 머리를 흔들어 생각을 털어냈다.

강사가 점심을 산다며 나가자고 했다. 함께 교육을 받던 사람은 총 4명이었다. 교육은 팀 별로 나눠서 이루어졌다. 강사 차를 타고 압구정동으로 향했다. 최고급 중형차였다. 차 자랑을 하고 싶어서 점심을 사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반들반들 윤이 나는 고급 세단이었다.   

밖에서 보면 가정집 같은데 들어가 보니 한정식 집이었다. 가격표를 보니 제일 싼 메뉴가 일인당 2만 원이었다. 당시 자장면 한 그릇 값이 1300원이었다. 2만 원이면 자장면 15그릇을 먹고도 남는 돈이었다.

강사는 단골인 듯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식당 여주인이 직접 테이블로 찾아와 인사하고 서비스로 와인도 한 병 주고 갔다. 종업원들도 모두 한복 차림이었다. 음식은 입안에서 살살 녹는 느낌이었다. 접시가 비워질 만하면 딱 먹을 수 있을 만큼 적당한 양의 다른 음식이 나왔다.

다른 세계에 온 느낌이었다. 외식이래야 동네 갈비집이 전부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아! 부자들은 이런 음식을 먹고 사는구나' 하는 생각에 약간 서러워지기도 했다. 여태껏 이런 음식이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살았다는 것에 대한 자책 같은 서러움이었다.


"내 발로 나간다는데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제발 내보내줘. 나 집에 가고 싶어."
"며칠만 버텨 보라니까. 아니 하루만 더 있어봐. 하루 더 듣고도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그땐 잡지 않을게."

그날 오후 사무실에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교육을 받던 사람이 흥분해서 집에 보내 달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묻지 않아도 왜 그러는지 알 수 있었다.


덩치들이 나서자 소동은 금세 진정되는 듯했다. 집에 보내달라고 소리치던 남자가 기가 죽었는지 얌전해졌다. 하지만 그것은 폭풍전야였다. 진짜 소동은 잠시 후에 일어났다. 집에 간다고 소리치던 남자가 창문을 열고 뛰어내린 것이다.

순식간이었다. 말릴 새도 없었다. 뛰어내린 남자는 다리를 다쳤는지 바닥에 쓰러져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2층이었지만 창문 턱 높이까지 합치면 족히 5미터는 돼보였다. 덩치들이 뛰어나가 쓰러진 남자를 일으켜 세워서 황급히 차에 태웠다. 이 남자 다리가 부러졌다는 사실은 나중에 소문을 듣고 알게 됐다. 

"형 어땠어요?"
"글쎄 솔직히 잘 모르겠어. 얘기를 들어보니 될 것 같기도 하고. 근데 확실한 건 이곳에서 파는 물건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팔기 힘들다는 것이야. 너무 비싸. 누가 이불 한 채를 몇 백 만원 주고 사겠어?"
"그렇지 않아요. 자석요에 대해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래요 '야마구치 다께요시'란 사람이 발명한 건데 과학적으로 증명할 순 없지만 분명 효능이 있어요."
"알아! 3일 동안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었어, 그 사람이 부모형제를 모두 고혈압으로 잃고 난 후 사람이 아프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다가 그 이불을 개발했다는 거. 그리고 그 이불이 신체 저항력을 높여서 병에 안 걸리게 한다는 거. 근데 그걸 어떻게 증명 하냐고?"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증명되지 않을까요? 자석요 덮고 잔 사람 중에 누군가 효과를 볼 테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날개 돋친 듯 팔리지 않겠어요?"
"글쎄~ 어쨌든 시간을 두고 좀 더 알아보기로 하고… 약속한 3일 채웠으니까 난 이제 집에 갈게."
#하얀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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