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수관 이음새로 뚫고 들어온 나무뿌리를 자른 뒤 찍은 사진입니다. 오른쪽 아래 사진은 부엌 설겆이 물과 변기 물이 합류하는 멘홀 전체 모습입니다.
박현국
일단 물이 빠지기를 기다려 하수구 통 속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이상한 물체가 보였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뒤뜰에 심겨진 나무뿌리가 하수구 관 이음새로 파고 들어가서 하수구 관을 막아버린 것이었습니다. 영화 괴물이 생각났습니다. 인간이 버린 화학약품이 한강으로 흘러들어 결국 괴물이 출현한다는 내용입니다.
역시 보이지 않는 물 밑이나 지하세계, 어둠의 세계는 무언가 인간에게 호기심과 무서움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공포영화, 납량시리즈나 여고생 시리즈 영화는 어둠을 배경으로 시작됩니다.
저희 집 하수구에 은행나무 뿌리 괴물이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이 은행나무는 씨로 심어서 지금까지 키워온 것입니다. 1999년 1 월 어느 날 교토 시청 부근의 공원에 간적이 있습니다. 그곳에 은행나무가 있고 은행 열매가 떨어져서 썩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주어다 심었는데 벌써 이층을 넘을 정도로 자랐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그동안 여러 가지로 충고를 했습니다. 은행이 열릴 때 쯤 냄새가 심하니 빨리 처분하는 것이 좋겠다. 은행나무가 자라서 뿌리가 집 아래로 뻗치면 집이 무너질 수도 있다 등등 말이 많았습니다.
씨부터 키워온 은행나무를 잘라버리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올 1월에는 가지를 다 잘라서 장대처럼 키웠습니다. 일단 가지가 없으니 볕도 잘 들고 나무가 크게 자라지 않아서 부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해를 넘기지 못하고 일이 터지고 만 것입니다. 과연 은행나무를 잘라야하는지 아니면 그대로 두고 미리미리 뿌리를 잘라야 하는지 망설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