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안전보건 전문의들이 공장을 방문해 노동자들을 상대로 근골격계 질환 등에 대해 상담하고 있다. 그러나 질의응답은 어긋나기만 하고 건강관리는커녕 기본적인 상담도 쉽지 않다.
시네마달
인터뷰 중 인상적인 장면이 있습니다. 일하는 현장을 봐야 검진을 제대로 할 수 있어 찾았다는 의사의 말에 중년 여성 노동자는 "몸으로 1시간만 일해 보면 다 안다"고 응답합니다. 눈에 보이는 작업과 눈에 보이지 않는 작업(환경) 간의 간극을 명쾌하게 응축한 이 말은 많은 것을 함의합니다.
"1시간만 일해도 석면이 얼굴을 하얗게 뒤덮는데, 이게 가슴을 조이고 숨이 막혀 4층에 올라가려면 세 번 정도 쉬어야 하거든. 저녁에 잠을 자려고 하면 기침이 나오거나 팔다리를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쑤시고 아파." 한때 마네킹 공장에서 일한 중년 남자와의 인터뷰는 이들의 작업환경을 단적으로 드러냅니다. 불과 2년 반 동안 일했을 뿐인 몸이 10년이 지나면서 거동조차 어렵게 망가진 것입니다. 그리고 카메라는 중간 중간 현장에서 마스크도 쓰지 않고 일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담담히 보여줍니다.
이제 카메라는 노동자들을 집단 상담하는 장면으로 이동합니다. 쇳가루 분진이 날리는 가운데 조립을 하고, 매캐한 연기를 내뿜으며 용접을 하며, 본드와 시너 같은 유기용재를 사용하면서 노동자들은 폐암에, 백혈병에, 심장질환에, 호흡기질환에, 원인 불명의 두드러기 등에 노출됩니다. 고된 노동과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담배와 술을 달고 살며 '안간힘'을 다해 버텨 보지만, 그 결과는 참혹합니다.
3시간 30분마다 1명씩, 하루 평균 7명 사망. 연간 사망자 수 2089명. 부상자 8만9459명. 총 재해자 수 9만8645명. 경제적 손실 17조 원. 아프간전 피해규모냐고요? 아닙니다. 지난해 한 해 동안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 적용되는 사업장에서 발생한 산재 현황입니다. 전쟁터 못지않은 '보라색' 일터,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산업재해 1위를 달성하고 있는 '산재공화국'의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올해 초 고용노동부는 산업재해율이 12년 만에 0.6%대로 떨어졌다면서 선진국 진입 운운하며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한국사회에서 노동자와 일터의 색깔은 보라색이다 다큐멘터리의 영어 제목은 'The Color Of Pain' 즉, 통증의 색입니다. 보라색은 다쳐서 멍이 들었을 때의 파르르한 통증의 이미지입니다. 영화에서 보듯 그 '보라'는 안간힘을 쓰며 혹독한 노동을 버텨내는 노동자들의 육신을 상징합니다. 그것은 정직한 노동으로 일용할 양식을 구하지만 돌아오는 건 각종 산업재해와 직업병뿐인 일터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영화는 한국사회의 산업 현장과 그곳에서 삶을 지탱하는 '안간힘'을 보라색으로 규정짓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