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 전 묵주기도 주송5월 '성모의 달'부터 시작된 미사 전 묵주기도를 매번 주송을 했다. '환희의 신비', '빛의 신비', '고통의 신비', '영광의 신비'순으로 매번 5단씩 바쳤다. 6월 20일의 모습이다.
전재우
매주 월요일 오후에는 서울을 갔다. 지난해 11월에 시작한 일을 올해 11월까지 지속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월요일에는 어김없이 서울을 갔고,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길거리에 오래 서 있곤 했다. '정의구현전국사제단'에서 시행하는 '천주교 월요시국기도회(여의도 거리미사)'에 참석하는 것이 내게는 참으로 중요한 일이었다. 월요일 저녁의 그 기도회에 참례하는 것으로 한 주간의 삶을 시작하는 셈이었다.
계절이 네 번 바뀌는 동안 일주일 간격으로 똑같은 시간에 한데 거리에 서서 하늘의 달과 별을 보며, 때로는 눈을 맞고 비를 맞으며 미사를 지내는 나 자신을 뜨겁게 격려하곤 했다. 내가 지닌 신앙심과 열정, 그 미사에 참례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심성, 그 미사에서 위안을 얻으며 결의를 다지곤 하는 내 마음구조에 대해 나는 진정으로 감사했다.
각지에서 달려와 미사를 주례하고 강론을 하고 공동 집전을 하시는 신부님들께 무한히 감사하곤 했다. 내가 월요일 저녁마다 여러 교구와 수도회에서 오신 10여 명, 또는 수십 명의 사제들과 함께 미사를 지낸다는 사실에서 벅찬 행복감을 안기도 했다.
미사 때마다 거리미사 장소에 나와 이런저런 봉사를 하시는 형제자매님들과도 정이 들었다. 그 '활동가'들에게도 무한히 감사하곤 했다. 미사에 오시는 분들 중에는 나처럼 매번 오시는 분들도 있었다. 나처럼 멀리에서 오는 경우는 아니었지만,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매번 미사에 오시는 그분들을 보며 애정과 존경심을 표하곤 했다. 나와 동일한 가슴구조를 지닌 이들과 자주 만나고 함께 한다는 것은 진정 행복감을 갖게 하는 일이었다.
나는 미사 중에 여러 번 시낭송을 하기도 했다. 두 번은 계절과 어울리거나 미사 지향과 부합하는 애송시를 낭송했고, 두 번은 거리미사에 관한 자작시를 낭송했다. 또 한 번은 가곡 '옛 동산에 올라'를 개사한 '옛 강변에 올라'라는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5월 '성모의 달'부터 미사 전에 바치기 시작한 묵주기도 5단의 주송을 줄곧 맡아왔다.
여의도 거리미사는 참으로 뜨겁고도 절절했다. 2009년의 '용산미사' 때부터 시작된 문정현 신부님의 "평화를 빕니다!"라는 인사, 점점 고조되는 세 번의 우렁찬 인사는 문 신부님이 제주 강정마을로 가신 이후에도 다른 신부님들에 의해 계속되었고, 신자 모두가 뜨거운 의기를 함께 나누고 확인하는 행사였다. 그리하여 강복기도 전에 다 함께 외치는 세 가지 구호는 신자 모두의 가슴에서 끓어오르는 절규요, 뜨거운 함성이었다.
분노와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