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동물농장'으로 만들고 싶은가

[주장]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판사에게도 정치적 자유가 있다

등록 2011.12.01 09:54수정 2011.12.01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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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개의 화난 목소리들이 서로 맞고함질을 치고 있었고, 그 목소리들은 서로 똑같았다. 그래, 맞아, 돼지들의 얼굴에 무슨 변화가 일어났는지 이제 알 수 있었다. 창 밖의 동물들은 돼지에게서 인간으로, 인간에게서 돼지로, 다시 돼지에게서 인간으로 번갈아 시선을 옮겼다. 그러나 누가 돼지고 누가 인간인지, 어느 것이 어느 것인지 이미 분간할 수 없었다.(<동물농장> 조지 오웰, 민음사)

<동물농장>은 조지 오웰이 1945년에 발표한 '우화소설'이다. 사람에게 착취당하던 동물들은 사람을 쳐내고 자신들만의 '평등사회'를 꿈꾸면서 법률까지 만든다.

첫째, 두 발로 걷는 자는 누구든지 적이다. 둘째, 네 발로 걷거나 날개를 가진 자는 모두 우리의 친구다. 셋째, 어떤 동물도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 넷째, 어떤 동물도 침대에서 자서는 안 된다. 다섯째, 어떤 동물도 술을 마셔서는 안 된다. 여섯째,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여서는 안 된다. 일곱째,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겉으로는 모든 동물이 사람들을 내쫓고 자신들만의 평등세상을 꿈꾸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돼지들, 곧 그 돼지들(스노볼, 나폴레옹, 스퀄러)을 지켜주는 개들만이 특권을 누리는 세상이 되어간다. 오웰이 풍자하고자 한 것은 옛 소련 권력체제(스탈린)였다.

하지만 단순히 공산주의를 비판한 것이 아니다. 헌법 조문에는 '민주공화국'을 천명하고, 입으로는 '민주주의'를 지향한다고 하지만 오로지 하나의 사상과 이념만을 강요하는 독재권력-우리나라로 치면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독재정권-을 신랄하게 비판한 것이다.

독재권력은 그들만의 기득권을 만들고, 견고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과 주장을 하면 가치없이 내친다. 비판과 견제라는 싹을 '싹둑' 잘라버림으로써 자신들 세상을 지켜나간다. <동물농장>에서 돼지들을 지켜주는 동물은 '개'이다.

개들은 '양심'이 겨자씨만큼이라도 있는 돼지들이 "이의 있습니다" 외치면 가차 없이 달려들어 물어뜯어버린다. 항의와 이의제기를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결국 거의 대부분 동물들은 방관자가 된다. 인간을 밀어내고 '동물농장'을 만들어 지상낙원을 바랐지만 그들은 인간과 똑같게 된다.


"누가 돼지고 누가 인간인지, 어느 것이 어느 것인지 이미 분간할 수 없었다."

'소신 발언' 판사에 "법복 벗으라"는 보수 언론


박정희와 전두환 정권 때가 '동물농장'이었다. 비판하는 자유와 말하는 자유를 빼앗았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고, 갇혔고, 닫혔던가. 민주공화국은 헌법조문에만 있었을 뿐, 인민주권은 없었다.

1987년을 지나면서 인민주권이 뿌리를 내렸다고 생각했지만 그런데 이명박 정권 들어서도 말하는 자유와 비판하는 자유를 빼앗고 있다. 시민들만이 아니다. 촛불을 든 사람들이 서울광장이나, 광화문 광장에 모이는 것 자체를 막아버린다. 체감온도 영하 10도에도 물대포를 쏴버린다. 흥분된 집회 참가자들 사이로 정복을 입은 경찰서장이 들어간다.

그리고 "시위대가 공권력을 폭행했다"며 엄벌하겠다고 했지만 사진 속 인물은 형사였고, 법원은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보수언론은 "불법이 합법을 집단폭행했다"며 1면에 보도한다.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라면, 한미FTA 찬성하는 자유가 있다면 반대하고 비판하는 자유도 있다는 사실은 이명박 정권은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급기야 판사까지 나섰다.

"뼛속까지 친미인 대통령과 통상관료들이 서민과 나라 살림을 팔아먹은 2011년 11월 22일, 난 이날을 잊지 않겠다."

인천지방법원 최은배 부장판사가 지난달 22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이 글을 '단독'이라며 보도한 <조선일보>는 "국민들은 법정 안과 밖에서 판사의 언행을 보며 그가 공정한 재판을 할 자질을 갖췄는지를 판단한다. 그래서 법관은 실제로 공정하게 재판해야 하지만 공정성을 의심받지 않도록 행동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게 싫다면 법복(法服)을 벗는 게 정상"이라고 맹비난했다.

<문화일보>는 한 발 더 나갔다.

지독한 적대적 이분법의 발상임은 물론, '뼛속까지 스며든 반미의식'이 묻어난다고 되돌려주고 싶다. 법관이 아니라 거리 시위에서 충혈된 눈으로 반미를 외치는 얼치기 소영웅주의자와 똑같다. 그는 스스로 법복을 벗고 나가야 한다. 공인으로서 자격이 없다. 이런 유(類)의 법관들이 재판을 하기 때문에 법의 이름을 빌려 반국가 사범들을 줄줄이 풀어주는 것이다. - <문화일보> 11월 25일자, <어느 현직 부장판사의 뼛속까지 스며든 반미>

양승태 대법원장 역시 "법관은 모든 언동과 처신에서 국민의 신뢰를 훼손하지 않도록 늘 자제하고 성찰하고 반성해야 한다"며 "법관이 국민의 존경을 받지 못하면 판결에 권위가 없어지고, 법원 기능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고 최은배 판사를 에둘러 비판했다.

한나라당은 "판사는 국가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의무가 늘 따라붙는다"며 "그런 자리에 있는 판사가 현 정부와 국가지도자에 대해 비판의 수준을 넘어 강한 적개심을 드러낸 것"이라고 최 부장판사를 비판했다. 그러면서 "2002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세계 대법원장회의에서도 법관행동준칙을 정해 '법관은 대중적인 논쟁에 휘말려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고 최 판사가 논쟁에 휘말렸다고 비판했다.

민주공화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사상 강요'

하지만 한나라당은 알고 있는가. 유엔이 정한 '사법독립에 관한 기본원칙'(국제연합 총회 40회기 결의 40/32. 1985년)도 "법관에게 시민적 자유를 보장하고, 결사의 자유를 인정하며, 정치적 의견에 따라 차별해서는 아니된다"(<한겨레> 11월 29일자, <정치표현 금지 위헌소지>)고 규정하고 있음을.

시민에게 말하는 자유가 있다면, 판사에게도 말하는 자유가 있다고 말한 것이다.  판사 이전에 대한민국 시민이다. 한미FTA를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고 벌떼같이 달려들어 "법복 벗으라"고 비난하는 것은 오로지 한 가지 생각만 강요하는 일로, 민주공화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사상 강요이다.

이정렬 창원지법 부장판사가 26일 페이스북에 "진보편향적인 사람은 판사를 하면 안 된다는 말이겠지"라며 "그럼 보수편향적인 판사들도 모두 사퇴해라. 나도 깨끗하게 물러나 주겠다"고 한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판사는 보수와 진보 그리고 중도를 지향할 수 있다. 그게 민주주의 국가의 사법부다.

이명박 정권과 조중동이 바라는 보수주의 판결만 내리는 사법부는 민주국가에서는 독약과 같다. 조중동이 그토록 염모하는 미국 사법부도 진보와 보수 그리고 중도가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 자기와 생각이 조금만 다르게 나오고, 보수정책을 비판하면 이를 용납하지 못하고, 법복 벗으라고 윽박지르는 것은 대한민국을 '동물농장'으로 만들려고 하는 극히 위험한 발상이다.

1987년 '부산 형제복지원' 강제노역 및 비리를 파헤쳐 전두환 정권에 타격을 주고, 부산지하철 비리 사건, 울산공해 사건 등 1980년대 이후 굵직굵직한 사건을 파헤친 검찰 출신 김용원 변호사는 그의 저서 <천당에 간 판검사가 있을까>에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나라 권력자들을 동물농장 돼지들이고, 우리나라의 판검사들은 동물농장 개들이다. 모욕, 비방, 명예훼손, 그리고 허위사실 유포 같은 판검사들이 즐겨 써먹는 죄명들을 개들의 이빨이나 발톱같은 것이다. 우리나라 권력자들은 판검사들 개들을 동원해 마음 먹은 대로 말하고 글을 쓸 시민의 자유를 질식시키고 있다.(118쪽)

최은배 판사와 이정렬 판사 같은 분들이야 말로 <동물농장> 개들에서 벗어나려고 발둥치는 법조인들이 아닌가. 최은배 판사는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은 사법 주권이 달린 사안이다. (판사의) 침묵이 오히려 비정상 아닌가."

대한민국을 '동물농장'으로 만들려는가. "판사는 입 다물라"라고 하지 마시라. 그동안 시민들 입 많이 틀어막았지 않는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 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다음 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동물농장 #최은배 #판사 #한미F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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