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와 법원공무원들 '최은배 판사' 옹호...대법원 비판

변민선 판사 "정작 윤리위원회에 회부할 사람은 조선일보 기자 아니냐"

등록 2011.11.29 18:06수정 2011.11.29 18:06
0
원고료로 응원
대법원이 한미FTA 비준동의안 강행처리를 비판하는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삭제한 최은배 인천지법 부장판사를 29일 공직자윤리위원회에 회부한 것과 관련, 동료 판사들은 최 부장판사를 옹호하고, 법원공무원들은 한 발 더 나아가 대법원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논란은 최은배 부장판사(사법연수원 22기)가 한미 FTA 비준동의안이 통과된 지난 2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뼛속까지 친미인 대통령과 통상관료들이 서민과 나라 살림을 팔아먹은 2011년 11월 22일, 난 이 날을 잊지 않겠다"는 글을 올리며 시작됐다.

<조선일보>가 지난 25일 기사와 사설을 통해 최 부장판사의 '정치편향성'을 거론하며 맹비난하자, 대법원은 판사들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사용에 관한 가이드라인 제정에 나서기로 하는 한편, 29일 열리는 공직자윤리위원회에 최 부장판사를 회부하기로 했다.

그런데 당시 한미FTA 비준동의안 강행처리에 대해 창원지법 이정렬 부장판사(사법연수원 23기)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비판 글을 올리고 있었다.

그는 지난 22일 밤 페이스북에 "피곤한 몸을 끌고 퇴근해서 들어왔더니 TV에서 나오는 황당한 소식"이라며 한미FTA 통과를 암시한 뒤 "드라마 계백을 보고 있는데, 황산벌 전투가 나오네요.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사람과 자신을 위해 나라를 팔아먹는 사람들..."이라는 글을 올렸다.

23일에는 "어제는 날치기 때문에 우울했는데, 오늘은 나꼼수 덕에 많이 회복되었다. 나꼼수 만세~"라며 한미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날치기'로 규정했다. 이날 '나꼼수'는 서울광장에서 열린 '한미FTA 비준 무효' 집회에 참석해 30분가량 토크콘서트를 가졌다.

최 부장판사에 대한 <조선일보>의 보도로 '정치편향' 논란이 된 25일에는 "대한민국과 우리 후손의 미래를 위해 한미FTA 비준동의안을 통과시키신 구국의 결단. 그런 결단을 내리신 국회의원님들과 한미안보의 공고화를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시는 대통령님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라며 "이것도 정치편향적인 글입니다"라고 뼈 있는 말을 남겼다.


특히 26일 이 부장판사는 페이스북을 통해 "진보편향적인 사람은 판사를 하면 안 된다는 말이겠지"라며 "그럼 보수편향적인 판사들도 모두 사퇴해라. 나도 깨끗하게 물러나주겠다"고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표출했다.

27일에는 KBS 개그콘서트(개콘)에 나오는 개그맨들을 부러워하는 글로 이번 사태를 꼬집었다. 그는 "전에는 개그맨분들 보면서 부럽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는데...오늘 개콘 보면서 자기 하고 싶은 말 시원하게 하는 개그맨분들이 너무 부럽다..."라며 "그나마 하고 싶은 말 맘껏 할 수 있었던 페북도 판사는 하면 안 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고...나 페북 계속할 꺼야. 나 좀 가만두고 건드리지 말라 말이야~~~"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 부장판사는 자신의 페이스북 글도 28일 언론에 보도되자, "제가 페북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페북이 그때 그때 맘속에 남아 있는 감정의 찌꺼기를 마음 편히 털어낼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며 "앞으로도 그렇게 할 꺼구, 맞춤법도 신경 안 쓰구, 그러니까 '이 양반 생각보다 되게 유치하네'라는 생각드셔도 그냥 그런 갑다 해주셔요"라며 페이스북은 사적인 공간임을 우회적으로 강조했다.

변민선 판사 "윤리위 회부는 사법부 독립을 위태롭게 할 위험이 있다"

최은배 부장판사가 공직자윤리위원회에 회부되기 전날인 28일 서울북부지법 변민선 판사(사법연수원28기)는 최 부장판사를 적극 옹호하는 글을 법원 내부통신망에 올려 눈길을 끌었다.

변 판사는 '<조선일보> 기사에 대한 짧은 소감'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먼저 "<조선일보>가 최은배 부장판사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기사로 올리자마자, 몇 시간 만에 최 부장판사님이 공직자 윤리위원회에 회부된 것을 보고 많이 놀랐다"며 당혹감을 나타냈다.

이어 "법관 개인이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사적으로 이야기했던 것을 공론의 장으로 끌고 와 그 글과 소속된 단체만을 근거로 최은배 부장판사님의 재판에 대한 공정성을 단죄하고, 나아가 법관들 개인이 할 수도 있는 의사표현을 위축하려는 시도가 잘못된 것 아닌가요?"라고 반문하며 최 부장판사의 글을 기사화한 <조선일보>를 지적했다. 

변 판사는 "법관이 다른 공무원보다 더 많이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킬 의무가 있다고 해도 법관 개인의 사생활 및 표현의 자유는 보호받아 마땅하다"며 "최은배 부장판사님이 페이스북에 사사로이 올린 개인적인 글을 모두 검열하고, 신상을 조사하고, 사상 검열까지 하여 외부에 공개하는 것, 하다못해 '좋아요'라는 동의 버튼 누른 페이스북 친구들의 신상까지 조사해 사실상 다 공개하는 것, 이것이 잘못된 거 아닌가요?"라고 따져 물었다.

그러면서 "정작 공직자 윤리위원회에 회부할 사람은 최은배 부장판사님이 아니라, (물론 공직자가 아니긴 하지만) 법관의 공정성을 의심하도록 유발하고, 법관 개인만 아니라 그 주변 친구들의 사생활을 심각하게 침해한 <조선일보> 기자 아닙니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변 판사는 "대법원이 여론 일각에서 문제제기를 했다고 하여 곧바로 관련 법관을 징계 또는 윤리위원회에 회부한 것은 사법부 독립을 위태롭게 할 위험이 있다고 본다"며 "이런 식으로 하면, 외부의 부당한 공격으로부터 법관이 얼마나 살아남을 수 있나요? 대법원장님도, 대법원도, 우리 법관 모두도, 법관이 여론이나 권력의 눈치만 보는 순치된 법관이 되기를 바라지 않을 거라고 굳게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사안은 헌법에서 부과한 법관의 정치적 중립의무와 헌법에서 보장하는 정치적 표현의 자유, 사생활 비밀의 자유 사이에 법적 쟁점이 많은 사안이고, 그렇다면, 우선 일선 판사의 의견을 수렴하고, 공론화한 다음 공직자 윤리위원회에 회부할지의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았을까"라고 대법원에 아쉬움을 표시했다.

법원공무원 "사법부가 특정언론에 너무 놀아나는 것 같아 씁쓸"

변민선 판사의 글이 게시되자 법원공무원들은 '절대 공감'을 표시하며, 대법원의 이번 윤리위원회 회부 결정에 대해 "너무나도 조급하고도 정치적인 결정", "사법부답지 못한 결정", "법원이 법관의 독립 자체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라는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법원공무원 유아무개씨는 "법원이 법관을 보호하지는 못할 망정 거짓말을 일삼는 언론의 글 하나 가지고 윤리위원회에 회부하다니"라고 혀를 차며 "반대로 한미FTA를 찬성하고 현 정부를 찬성하는 글을 올렸더라도 지금과 똑같이 바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의무위반으로 윤리위원회에 회부할 것인지 묻고 싶다"고 대법원을 비판했다.

조아무개씨도 "만일에 판사 글이 FTA 찬성 글이었으면 그래도 <조선일보>에서 보도했을까요? 그래도 윤리위에 회부했을까요?"라며 "사법부가 특정언론에 너무 놀아나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고 대법원에 대해 씁쓸함을 표시했다.

김아무개씨는 "<조선일보>는 특히 법관 등에 대한 언론테러를 통해서 자신들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보호막을 만들고 있다"며 "용기 있는 판사님들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사법부의 단호한 대처가 없다면, 앞으로도 조선일보의 입맛에 맞지 않는 판사의 사생활은 끊임없이 파헤쳐질 것"이라고 대법원이 나서 정면 대응할 것을 주문했다.

서아무개씨는 "<조선일보>와 싸우기보다는 적당히 눈치를 봐야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이라고 꼬집으며 "하지만 유일하게 조선일보사와 기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해 당당히 소송에서 승리했던 정진경 판사님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박아무개씨는 "양승태 대법원장은 국민과 소통하는 법원을 강조했다. 소통은 듣는 것뿐 아니라 자유로운 의사의 표현도 포함된다. 주변사람과 소통하는 것조차도 윤리위에 회부하는 대법원의 공허한 외침!"이라며 "'국민과 소통하는 열린 법원' 참으로 부끄럽다"고 쓴소리를 냈다.

이아무개씨는 "판사 이름으로 된 글 하나 올리는 게 이렇게 힘듭니다. 제발 이 냄새 나는 관료조직에 길들여지지 마시고 오직 국민들만을 위한 명예로운 법관이 돼 달라"며 "한미FTA의 ISD조항 반대한다고는 말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사법주권침해에 대한 보고서라도 판사 이름으로 한 장 올라와야 되는 거 아닙니까?"라는 의견도 제시됐다. 

한편,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본부(본부장 전호일)는 28일 성명을 통해 "최은배 부장판사에 대한 윤리위원회 회부는 너무나 급박하고 경솔한 행위였다"며 대법원에 즉각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또한 29일 오전 8~9시까지 대법원 정문 앞에서 윤리위 회부 철회 촉구 1인시위를 벌인 전호일 본부장은 "이번 대법원의 조치는 개인의 사생활 및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뿐만 아니라 사법부 독립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매우 잘못된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법원본부는 이번 공직자윤리위원회에서 사법부 독립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결정이 나온다면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임을 엄중히 경고한다"고 밝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최은배 #이정렬 #변민선 #법원본부 #윤리위원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2. 2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3. 3 미 대선, 200여 년 만에 처음 보는 사태 벌어질 수도 미 대선, 200여 년 만에 처음 보는 사태 벌어질 수도
  4. 4 천재·개혁파? 결국은 '김건희 호위무사' 천재·개혁파? 결국은 '김건희 호위무사'
  5. 5 "민주당 지지할 거면 왜 탈북했어?" 분단 이념의 폭력성 "민주당 지지할 거면 왜 탈북했어?" 분단 이념의 폭력성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