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책보기얼마만에 여유일까? 예전에는 만화책 자주 봤었는데.
소광숙
나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집안에, 오래된 평온함이 다시 찾아온 듯한 것을 느낀다. 안 그런 척, 고 3이 뭐 대수냐고 하며 별나지 않게 지내려 했으나, 알게 모르게 긴장 속에 살았나 보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느낌이랄까. 아이 말처럼 '다 끝난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일찌감치 합격소식을 들은 아이들은 이미 몸과 마음에 날개를 달았다. 운전면허를 딴다고 벌써 학원에 다니는 아이도 있다. 또 3년 내내 야금야금 찐 살을 작정하고 뺀다고 헬스장에서 몇 시간이고 보내는 아이도 있다.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는 친구들 눈치가 보여 마음껏 들뜬 모습을 보일 순 없지만 대학입학이라는 내년 3월까지의 시간은 이들에게 '무엇이든,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시간이다.
마음은 가시방석이라니까!"요즘 네 친구들 뭐하며 지내니?""시험 끝나도 뭐 별거 없어. 특별나게 놀지도 않아. 그냥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 몇 명은 편의점 알바 하는 친구들이 좀 있고...나도 해보고 싶어."울타리에 갇혔던 수험생들은 제한된 생활 속에서, 도넛 가게에서 또는 편의점에서 일하는 언니, 오빠들을 꿈꾸었나 보다. 내 아이도 평소에 입버릇처럼 말했다.
'나 시험 끝나면 편의점 알바해 보고 싶어.'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으면 먹고 살 길이 막막한 아이들에게는 사치로 들리는 소리다. 이들에게 알바는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닌 '해 보고 싶은 일'일 뿐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스스로 돈을 벌고 싶어서, 공부 아닌 그 어떤 다른 것에 대한 가능성이 해방으로 여겨졌던 고3들은 꿈꾸던(?) 아르바이트를 시도한다.
"근데 엄마, 우리 반 아이들 중에 반 이상은 죽을 지경이라고 해.""이미 자기 점수를 가늠해, 대략 갈 수 있는 대학이 그려지지 않나?""수능점수 평소보다 안 나왔다는 친구들이 태반이야. 재수한다고 하는 친구들 정말 많아. 시험 끝나면 뭐해. 다들 가시방석이야. 다들."누구는 수능 시험을 보는 중간에 재수를 결심했다고 한다. 또 어떤 아이는 지금까지 열심히 하지 않았다며 다시 한 번 자신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고 했단다. 그간 방에 책상이 없었다며 새로이 책상을 들여놓은 아이도 있다고 했다.
수능 점수가 그대를 속일지라도 이제 내일(30일)이면 수능점수 발표가 있을 것이다. 자신이 등급 컷에 걸렸다며 혹시나 희망을 품었던 아이도, 가채점을 하며 의기소침했던 아이도, 이제는 숫자로 환산되는 자신의 점수와 등급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생각만 해도 가슴 어딘가가 울렁거린다. 1년 동안 아이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오면서 마음이 흔들렸던 적이 없었는데, 수능점수표를 받아 든 아이를 담을 생각을 하니 두려움이 앞선다.
'그날은 학교에 가지 말까?'아이는 타고난 성격이 원래 그런지 한 번도 조바심을 내지 않지만, 나는 솔직히 그 순간 아이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다.
'1,2점의 점수차이로 인생이 달라지지 않는다.' '명문대학 진학이 인생의 행복이나 성공을 보장하는 시대는 지났다.''최선을 다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