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경찰이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대의 요람인 뉴욕 맨해튼 자유광장(주코티파크)를 기습 진압한 직후, 마샤 스펜서(56)씨는 뜨개질하던 손을 멈추고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공원안을 바라봤다.
최경준
"경찰들이 새벽에 트럭을 밀고 들어와서 모든 것을 쓸어가 버렸다. 많은 사람이 연행됐고, 몇 명은 심하게 다쳤다. 심지어 기자도 머리를 다쳐서 병원으로 실려 갔다."
지난 15일(현지시각) 오전 7시, 미국 뉴욕 로어 맨해튼 자유광장(주코티공원) 앞. 마샤 스펜서(56)씨는 경찰이 설치해놓은 철제 바리케이드를 붙잡고 서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공원 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그러나 그의 주름진 뺨에는 어느새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는 뜨개질 바늘을 잡은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말을 이어갔다.
월가 시위대 위해 뜨개질하는 할머니들"이것은 완전히 엿 같은 일이다. 그러나 (일이 이렇게 됐지만)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나는 여전히 여기에 나와서 내 일을 할 것이다. 물론 내가 늘 앉아 있던 의자를 그들이 가져가기는 했지만 말이다. 다른 시위대들도 다시 광장으로 돌아올 것이다."바리케이드에 기대어 선 스펜서씨는 다시 손에 들고 있던 뜨개질 바늘을 부지런히 놀리며 붉은색 털스커트를 짜기 시작했다. 그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600여 평 규모의 광장에는 수십 명의 경찰에 의해 '점거'된 공원이 허허롭게 펼쳐져 있었다. 전날만 해도 100여 동의 텐트와 침낭이 들어차 있었고, 수백 명의 시위대가 모여 미국의 정의와 미래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던 곳이다.
이날 새벽 3시경,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은 경찰과 청소차를 앞세워 '월스트리트 점령'(Occupy Wall Street) 운동의 요람이자 상징인 자유광장(주코티공원)을 기습적으로 진압했다. 무료로 음식을 나눠주던 식당을 마지노선으로 정한 시위대는 서로의 팔짱을 걸고 버텼지만, 최루액을 뿌리며 곤봉을 들고 달려드는 경찰을 이겨낼 수는 없었다. 5명의 기자를 포함해 200여 명이 연행됐고, 많은 사람이 다쳤다. 시위대가 쓰던 텐트와 침낭, 그리고 수천 권의 책이 압수돼 폐처분됐다.
이틀 뒤인 17일 오후, 자유광장(주코티공원)을 다시 찾았다. 이날은 미국식 금융자본주의와 경제적 불평등에 저항하기 위해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를 시작한 지 2개월째 되는 날이다. 스펜서씨의 말대로 시위대는 다시 자유광장으로 돌아왔다. 광장 전체를 바리케이드로 둘러싼 경찰의 감시 때문에 더 이상 광장에서 침낭을 깔고 잠을 잘 수는 없지만, 시위대의 투쟁 열기는 여전히 뜨거웠다. 시위대는 이날을 '국제 행동의 날'로 정하고 뉴욕시내 곳곳에서 산발적인 시위를 벌이며 총력 투쟁을 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