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주 큰스님 글씨 '방하착' 2002년, 94세 때 써주셨다.
임윤수
석주는 한자와 한글 글씨를 모두 잘 썼지만 스스로는 한글 서체를 어느 정도 잡았다며 한글 글씨가 조금은 낫다고 자평했다. 서울 은평구 삼각산 진관사,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 청량산 망월사의 대웅전 주련 등이 석주의 한글 글씨다.
석주는 한글 이외에 한자로 쓴 현판과 주련을 전국 사찰에 많이 남겼다. 아마 글씨로 가장 많은 보시를 한 게 석주일 것이다. -명필 73쪽-
생전에 뵈었던 석주 큰스님, 심지어 종파를 달리하는 목사에게까지도 글을 써 주었다는 석주 큰스님도 만나고 당대의 명필가인 추사 김정희도 명필로 만나니 이 또한 <명필>에서 찾을 수 있는 즐거움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붓 길을 따라 가는 천년 여행명필가들만 만나는 게 아니라 명필을 담고 있는 커다란 그릇, 사찰이건 계곡이건 서운이건 역시 또 만나게 됩니다.
고향에 있는 계곡 바위에 써져있는 글씨기에 무심하게 바라봤던 그 글씨들이 우암의 글씨였으며 그 글에 이토록 오묘한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 캄캄했던 마음에 햇살이라도 든 기뿐입니다.
우암은 특정한 서법을 익히지 않고 고향인 회덕(懷德)의 '회송(懷宋)' 집안의 가법을 발전시켜 자법을 터득했다. 그의 글씨는 성품대로 강건하며 장중하다. 필세가 강하고 예리하다. "글씨가 곧 그 사람의 됨됨이와 같다 書與其人"는 말대로 우암의 강직한 성품과 학문 세계를 그대로 표출한 것이다. -명필 125쪽-명산대천을 떠도는 풍류객의 마음으로 읽고, 붓을 움켜주니 선비 한 획 한 자를 새기고 파던 석수장이의 마음으로 새기니 명필에 담긴 의미와 역사성이 뭉클뭉클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봤어도 알아보지 못한 명필, 봤으면서도 읽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던 그 글씨에 담긴 멋과 여유를 <명필>에서 되새김질을 하듯 맛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미 다녀온 곳에 있던 명필은 기억으로 더듬고, 아직 보지 못한 명필은 사전지식으로 채비 할 수 있으니 <명필>을 일독하는 시간은 붓 길을 따라 시공을 넘나드는 천년 느낌을 갈무리하고 채비가 될 것 입니다.
덧붙이는 글 | <명필>|지은이 김남인 | 펴낸곳 서해문집 | 2011.11.5 | 15,900원
명필 - 역사와 해학의 글씨를 만나다
김남인 지음,
서해문집,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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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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