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강장 옆 미용실... 합성이 아닙니다
김현우
머리를 자르며 졸고 있는데 어디선가 안내방송이 나온다.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한걸음 뒤로 물러서 주시기 바랍니다."꿈 속의 한 장면이 아니다. 실제 7호선 건대입구역에는 역사 안에 미용실이 있다. 보통 지하철 상가는 승강장 밖 역사에 있지만, 이 미용실은 특이하게 열차를 기다리는 승강장 바로 옆에 있다. 사진을 찍는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한 어르신은 "요새는 지하철에 미용실도 다 있구먼"이라며 웃는다.
3평 남짓한 공간에서 2년째 미용실을 운영하는 미용사 19년 경력의 박을선(41)씨. 박을선씨는 "많은 사람들이 신기한 듯 한 번씩 쳐다보면서 지나간다"며 "보통 지하철 상권이 발달해도 가게들이 대부분 승강장 밖에 있는데 우리 가게는 그렇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상점은 무조건 밖에 있다'는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깬 것"이라고 덧붙였다.
"안녕하세요. 그간 잘 지내셨어요?""어르신 또 오셨네요? 머리가 금방금방 자라시나 봐요. 하하. 이쪽으로 앉으세요." 어르신은 이 미용실의 단골이다. 익숙하게 겉옷을 옷걸이에 걸고 자리에 앉은 어르신 손님. 이 어르신은 "집 가는 길에 잠시 들러서 머리를 할 수도 있고, 가격도 6000원이라 저렴해서 자주 오다 보니 어느새 단골이 됐다"고 박씨를 보며 히죽 웃었다.
기자도 달리는 열차를 배경으로 머리를 다듬어봤다. 머리를 깎기 전에 미용사 박씨는 스프레이 같은 제품을 머리에 뿌리고 감겨주기 시작했다. 박씨는 "이 샴푸는 우주인이 쓰는 샴푸여서 물이 필요 없습니다"라며 "그냥 이렇게 감고 종이 수건으로 털어내면 끝이에요"라고 귀띔했다.
내 주문은 '숱을 많이 치고, 길이는 전체적으로 짧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대개 사람들은 저가의 남성 전용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면 '버섯 머리'가 될까 봐 걱정한다. 버섯 머리란 바리깡(이발기)으로 뒷머리와 구레나룻을 하얗게 쳐올리는 머리 스타일. 나도 체험 삼아 머리를 맡기긴 했지만, '곧 내 머리가 버섯이 되겠구나'라며 내심 긴장했다. 하지만 웬걸? 처음부터 끝까지 바리깡은 쓰지 않고 가위로 머리를 다듬어줬다.
박씨는 다시 한 번 머리를 우주 샴푸로 감긴 다음 "찝찝하시면 헹궈 드릴까요? 이쪽으로 오세요"라며 구석에 있는 미용 세면대로 나를 안내했다. "여기는 따로 수도나 전기를 끌어오기 어려운 공간"이라며 "에어컨 설치하는 데도 돈이 많이 들었고, 수도관이 들어오지 않아 직접 물을 길어 와 수도 펌프로 머릴 헹궈 드리고 있어요"라고 한다. 구석에 놓여 있는 20리터짜리 물통이 눈에 들어왔다. 이어 박씨는 "지하철 기준 소방규격 등을 준수해야 하니까 불편한 부분도 있지만 큰 어려움은 없어요"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지하철의 변화,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