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에너미 앳 더 게이트> 포스터.
파라마운트 픽쳐스
늦은 밤 울려 퍼지는 흥겨운 노랫소리와 신나는 음악. 손뼉을 치며 빙글빙글 춤을 추는 사람들. 춤을 추지 않는 사람들도 삼삼오오 모여 음식을 먹고 '방귀로 촛불끄기'같은 게임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진한 아이라인을 그려넣는 여성도 보인다.
자, '파티 타임'이다. 세상에 이렇게 재미있는 파티는 없다. 누가 뭐래도 신나게 즐기는 시간이다. 인생의 걱정은 모두 날려버리자. 몸을 흔들고 맘껏 먹고 마시자. 촛불 앞에서 엉덩이를 까고 방귀를 뿜어내보자.
하지만 화면을 통해 파티를 지켜보는 관객들은 즐겁지 않다. 괴롭다. 불편하다. 기쁨 대신 슬픔이, 웃음보다 눈물이 앞선다. 신나는 파티가 열리고 있는 곳이 사실은 치열한 전쟁터이기 때문이다.
당장 내일이 걱정이다. 파티를 즐기는 사람들 중에 몇 사람이나 내일 다시 볼 수 있지? 모레는, 다음 주에는, 다음 달에는, 누가 살아남는 거야? 아니, 정말 살아 남는 사람이 있기는 해?
섬뜩하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사람들의 파티라니.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춤추고 노래할 수 있을까.
"여기 사람들은 자기들이 죽을 거라는 걸 알아. 그래서 살아 돌아오는 날은 보너스야."의문은 춤을 추던 소련군 바실리 자이체프의 설명으로 해결된다. 영화 <에너미 앳 더 게이트>(2001)는 스탈린그라드 공방전을 소재로 만든 영화다.
영화는 뛰어난 저격술로 독일군 수백 명의 목숨을 빼앗았던 실존 인물 바실리(주드 로)의 이야기로 전쟁의 참상을 그려낸다.
바실리가 전장에 투입되면서 지급받은 무기는 총알 뿐. 바실리는 총알을 들고 총을 든 다른 군인을 따라 나선다. 2인당 소총 1정, 2인 1조다. 결과는 예상대로다. 막강 화력을 자랑하는 독일군을 향해 달려가다가 쓰러지는 소련군의 진격 장면은 처참하다.
그리고 독일군의 총을 피해 뒷걸음질쳤다가 소련군 기관총에 맞아 숨지는 소련군의 모습은 슬프다. 총소리와 비명소리 그리고 쓰러지는 병사들. 소름이 돋는다.
그래서다. 살아남은 자들이 기뻐할 수밖에. 병사들이 밤마다 생환 축하 파티를 벌이는 광경은 순간을 영원처럼 살아내는 모습이다. 생명을 연장한 밤, 세상에 이렇게 기쁜 파티는 없다.
"차 한 잔, 담배 한 개비도 행복감 안겨줄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