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문화재단이 소유한 미술관 리움. 이곳의 관장은 이건희 회장의 부인인 홍라희씨다.
김현준
한남동 리움을 둘러봤을 때도 기분은 그다지 유쾌하지 못했다. 기업 사주 일가의 미술관에 전시되고 있는 국보들을 보니 감탄보다는 탄식이 나왔기 때문이다. 듣기로는 도굴이 성행하던 일제시대 당시 국보의 유출을 막기 위해 이병철 전 회장이 사서 모은 것이라고 한다. 그러했기에 소중한 국보들을 이만큼이나 지킬 수 있었다나. 하지만 순수한 마음으로 지켜낸 것이라면 이제는 나라에 돌려줘야 맞지 않을까. 문화재단을 만들면서까지 국가의 보물들을 소장하는 모습은 수긍하기 힘들었다.
발걸음을 돌려 현대 미술이 전시된 곳으로 향했다. 현대미술하면 떠오르는 사건이 하나 있다. 미술품 경매시장에서 말라비틀어진 사과찌꺼기가 낙찰됐는데, 게빈 터크의 수백만원짜리 작품인 실낙원이었다. 이 사건은 현대미술이 과장된 마케팅을 통해 작품의 값어치를 부풀린 대표적인 사례로 논란을 일으켰다. 부의 불평등과 상류층들의 허위의식을 가장 적나라하게 대변하는 것이 현대미술 시장이란 것이다.
이러한 현대미술 시장에서 데미언 허스트의 작품들은 상당히 유명하다. 허스트는 토막낸 동물이나 죽은 상어를 포름알데히드에 보관한 작품 시리즈로 유명해진 인물이다. 첫 번째 상어 '살아있는 자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처럼 작품보다는 제목이 훨씬 더 기발하고 대단하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크리스티의 한 미술품 경매사는 취향을 비난할 필요까진 없다고 하면서도, 자신이라면 절대로 구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허스트의 작품을 비판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허스트는 소의 머리 옆에 파리가 사육되는 통을 배치한 <천년>같은 엽기적인 작품들이 이슈가 되면서, 현대미술 시장에서 가장 높은 명예와 부를 형성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의 상어 시리즈 가운데 '신의 분노'라는 작품은 400만 달러의 가격으로 한국에 팔렸다고 들었다. 구매한 곳은 바로 삼성 미술관 리움이다. 방문했으니 한번 보고 싶었다. 액체 속에 잠겨있는 죽은 상어를 눈앞에서 직접 보았을 때 나는 무엇을 느끼게 될까.
'신의 분노'대신 '죽음의 춤'이 있던 곳하지만 '신의 분노'는 그곳에 없었다. 관계자에게 물어봤지만 누군가에게 되팔았는지 아니면 상어의 부패가 진행되어 전시가 불가능해진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허스트의 상어 시리즈엔 썩어서 보존이 곤란해진 작품도 끼어있다).
대신 한쪽 벽면에 붙어있는 '죽음의 춤'을 발견했다. 허스트가 스테인리스와 유리로 만들어진 선반 위에 수많은 알약들을 늘어놓은 일종의 약장 시리즈 가운데 한 작품이다. '죽음의 춤'이라는 제목 때문인지 불현 듯 삼성 반도체 공장의 백혈병 희생자들이 어른거렸다.
미술관을 나오면서 도대체 이곳의 존재 의미는 무엇일까 생각해 봤다. 가치를 환산하기 힘들 정도의 수많은 국보들과 더불어 전시되는 값비싼 현대미술 작품들. 이곳이 지니는 예술적인 가치가 클까 아니면 사회적인 부조리가 더 클까. 이건희 회장 일가의 부와 사치로 점철된 비상금고를 둘러봤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것을 보고 뭘 배우라는 것인가.
그러는 한편 회사에서는 끈질길 정도로 복장규제가 지속됐다. 그림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출근한 직원은 내버려두면서, 청바지를 입고 출근한 나에게만 끊임없는 충고가 전달됐다. 어느 날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겠다는 심정으로 비장하게 펜을 들었다. 수많은 고민을 뒤로한 채 결국엔 서명했다. 6개월 할부로 새 양복을 산 것이다.
며칠 후, 퇴근하던 중 우연하게도 이사님과 복도에서 마주쳤다. '어라, 이게 누구야? 오늘은 제대로 입었군!'이라고 말해주실 줄 알았다. 하지만 큰소리로 인사를 건네자 시선을 피하면서 마지못해 받아주셨다. 함께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어색한 침묵만 감돌았다. 그날따라 힘없이 서있는 이사님의 모습이 우울하게 느껴졌다.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봤다. 회사를 계속 다녔을 때 미래의 나는 후배들에게 어떻게 보여 질까. 꿈은 사치이며 굶어죽지 않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판단해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돈'이라는 가치가 나를 지배해 갔다. 굶지 않을 만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조금만 더'를 연발하며 나를 몰아붙였다. 그래서 행복한가. 밤새도록 질문을 던졌지만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글 쓰는 꿈을 포기하고 평범한 직장을 다니는 동안 스스로 생활의 중심으로 살아왔던 순간이 얼마나 있었는지 돌아봤다. 지루한 삶이었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퇴사 의사를 전했다. 과장님께서 많이 당황하셨지만 결정을 존중해주셨다. 미뤄두었던 작품을 다시 쓰면서 취재 수첩을 뒤적이다가 문득, 20대 끝 무렵에 인생의 방향을 고민하게 만들어준 삼성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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