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열하는 김훈 중위 어머니오열하는 김훈 중위 어머니
시사인
"여기 대한민국 맞아요. 나는 국민입니다. 여기가 법치국가인 대한민국 맞나요? 어떻게 이런 판결을 내릴 수 있나요? 우리가 정말 국민인가요?" 우리가 김훈중위사건을 그대로 묻어두고 남의 일인양 냉담하게 방치할 경우 김훈 중위 어머니가 법원에서 한 절규는 이 땅의 다른 어머니들의 절규로 끊임없이 반복되어서 우리에게 돌아 올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많이 분노했는데 그 이유는 이렇다. 고상만은 김훈 중위사건 조사 중 국방부 모 대령과의 잊을 수 없는 전화 통화내용을 소개했다. 그 국방부 대령은 저자에게 말했다.
"그깟 장교 하나 죽은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60만 대군의 명예를 훼손해요? 전쟁이 나면 장군도 팡팡 나가 떨어져 죽는 마당에…. 거 쓸데없는 일 그만 하세요." 그는 그렇게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속사포처럼 쏟아내며 거칠게 전화를 끊어 버렸단다. 자기 아들이 죽어도 그가 그렇게 말했을까? 고상만은 그의 말이 고위 영관급 장교가 한 말이라고는 정말 믿을 수 없는 천박함이 넘쳐 흘렀고 그것이 김훈 중위 사망을 보는 국방부의 입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담담히 적는다.
고상만은 또 김훈 중위 사건에 대한 의혹이 불거지면서 각 언론이 연일 도배하다시피 기사를 쏟아내던 1998년 12월 어느 날 아주 점잖은 중년 남자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전방부대 소속 모 군종신부라고 자신을 밝힌 그는 고상만에게 자신의 부대에서도 여러 건의 사망사건이 있었다며 서두를 꺼낸다. 그러면서 참 점잖게 "고생이 많다", "좋은 일 한다" 등등 신부다운 격려의 말을 한다.
그런 다음 나온 이 군종신부라는 사람의 말은 이렇다.
"다 좋은데 일은 가려서 해야지요. 부모들이 애 새끼들을 나약하게 키워 툭하면 자살하게 해 놓고는 뭘 잘했다고 부대까지 찾아와서 항의를 하는 것인지 한심스럽소. 지들이 자식새끼들을 잘못 키워 자살하도록 해 놓고는 부대까지 찾아와서 항의를 하니 참 한심합니다." 고상만은 그가 한 말은 차마 다 옮겨 적을 수 없는 수준의 폭언이었고, 듣다보니 화가 나서, "당신, 신부 사칭해서 전화하는 거지? 당신 같은 사람이 신부일 리가 없어. 한 번만 더 전화해서 헛소리하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알았어?" 하고 전화를 끊었다. 고상만은 지금도 그가 신부가 아닐 것이라고 믿고 있고. 그리고 아니기를 바란다고 했다. 나 역시 그렇다. 그런 인간이 제발 신부가 아니길 바란다.
이 책에서 저자는 또 김훈 중위 사건을 둘러싸고 국방부 관계자들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은 보통 상식과 이성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다 가질 수 있는 물음인 것이다, 그런데 그 상식적인 질문에 대한 국방부 관계자 답은 어이가 없다. 극히 일부를 소개하면 이렇다.
이 사건의 자문위원이었던 고상만은 "애초 유족은 몰라도 자문위원으로 추천된 우리들은 자유롭게(총기사건 전문가인 노여수 박사를) 만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약속하지 않았느냐?"며 국방부 특별조사단(특조단)에게 항의했다. 그러자 특조단 관계자는, "억울하면 언론에 대고 말해"라고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었다.
또 유족과 저자를 포함한 자문위원들에게 사건현장검증을 약속한 특조단이 일방적으로 약속을 파기하는 장면은 더욱 기가 막힌다.
"사건 현장에 도착한 후 우리는 특조단측 수사관으로부터 참으로 황당한 말을 들어야 했다.... 총알이 나간 방향 등에 대해서만 조사하고 애초 약속했던 화약흔과 지문 채취 조사는 계획에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특조단장의 철썩 같은 약속을 언급하며 강력하게 항의했으나 현장의 군수사관은 '우리는 그런 지시를 받은바 없다.'며 간단히 무시했다.... 판문점에서 서울로 돌아온 우리는 바로 특조단장을 찾아갔다. '특조단이 이렇게 인권단체를 기만할 수 있습니까? 왜 약속을 어긴 것입니까?'하며 항의하는 나에게 그는 아무런 대꾸도 없이 알 수 없는 미소만을 얼핏 얼핏 얼굴에 보이며 앉아 있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표현한다면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하는 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