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철도원, 김행균 역장
곽진성
2011년 11월, 김행균씨는 현재 지하철 코레일 개봉역 역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매일 5만여 명의 이용객이 찾는 개봉역, 그는 역 구석구석을 누비며 지하철 이용객들의 불편 사항을 체크하고, 도움을 주고 있다. 이용객에게 친절한 그의 모습은 역장의 권위 대신, 철도원이 푸근함이 느껴진다. 그를 만나 첫 인사를 건넸다.
- 안녕하세요. 김행균 역장님. 최근 근황이 궁금합니다."네, 저는 현재 코레일 1호선 개봉역에서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지하철이 직원이 많은 조직이 아니기 때문에 직접 나서 이곳 저곳을 살펴야 합니다. 밤사이 상황도 살펴보고, 시설물도 둘러보고, 또 많은 승객이 이동하기에 응급환자도 발생하는데. 이런 부분에 신경을 씁니다."
- 여전히 현장을 잘 살피시는 것 같습니다. 불편한 점은 없으신가요?"글쎄요. 지금 (사고 후) 8년이 지났지만, 예전처럼 똑같이 행동하고, 생각을 합니다. 연속성이 있는 일이기 때문에, 업무적으로 크게 달라진 것 없습니다. 다만, 상황이 벌어졌을 때, 예전과 같이 달리지를 못하고 빠른 걸음으로 가는 것, 그런 점이 좀 달라졌습니다."
업무를 하고 있는 김행균 역장의 모습에서 철도원이란 직업이 천직처럼 느껴진다. 문득, 그가 이 직업을 가지게 된 이유가 궁금했다.
- 철도원 꿈은 어떻게 가지신 건가요? 천직이신 것 같습니다만,(웃음)"61년 태어났는데, 서울 마포 산동네에 살았습니다. 제가 사는 산동네 주변에, 하루에 4번 운행하는 기찻길(당인리선)이 있었는데,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였지요. 그래서 철도가 정겨웠던 것이 사실입니다. 꿈이 마도로스(선장)와 기관사였습니다. (웃음) 하지만 고등학교에 갈 당시, 당시 아버님이 아프시고, 형님도 군대 가고 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공부를 하기 위해 학비가 무료인 '국립 철도 고등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적성에 잘 맞았고, 나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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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철도원 김행균 역장을 만나다 ⓒ 곽진성
- 그렇게 철도원의 첫 발을 내딛으신 거군요. 첫 근무지는 어디셨나요?"부산이었습니다. 1979년 12월로 기억을 합니다. 당시 한 겨울에 발령을 받았는데, 바닷바람이 워낙 세서 고생을 했습니다. 화물열차행선지 별로 정리하는 일을 했었습니다."
- 혹 그 당시, 결혼도 하셨나요? "네, 첫 부임을 받을 때 부산, 포항 등지에 있었는데, 아내를 포항에서 만났습니다. 친구 결혼식에 갔다가. 친구의 친척 동생을 보고 마음이 갔지요. 아내도 제 첫인상이 나쁘지 않았는지. 만남을 가졌고 결혼을 했습니다."
많은 신입사원이 그렇듯, 김행균 역장도 철도원에 대한 자부심과 열정이 넘쳐나는 그런 젊은이였다. 1990년 초반, 서울로 자리 이동을 한 그에겐 파란만장한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철도원의 아픔, 고통이 찾아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