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내라 청춘내 군생활을 180도 바꾼 이 한 권의 책. 법륜스님이 군대에 있는 병사들과 함께 나눈 즉문즉설. 포켓북 형태로 만들어져서 전투복 윗주머니에 넣어둔 채, 주로 화장실에서 많이 읽었습니다.
이준길
책 속에서 한 병사가 법륜스님에게 이런 질문을 합니다.
"저를 유독 괴롭히는 선임이 있습니다. 저를 괴롭힐 때나 제가 괴롭힘을 당하고 나서 표정이 안 좋으면 "표정이 썩었다"고 뭐라 하고, 심할 때는 때리기도 합니다" 법륜스님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중에 전역해서 회사에 취직하면 상사가 생길 테지요. 그런데 그때 가서 상사와 사이가 좋지 않아서 사표를 던지고 나와 버리면 내 손해가 막심하잖아요. 그러니 그런 걸 지금 연습하는 거라고 생각해 보세요. 그 선임이 나에게 어떻게 해도 그 선임에게 화가 안 나는 내가 되어보는 것을 목표로 세워보세요. 마음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저 선임이 나빠서 화가 나는 줄 알았는데, 내가 화를 일으키는 거구나. 일체유심조라는 게 이런 거구나! 그 선임을 스승으로 삼아서 공부해 보세요. 그러면 엄청난 은혜를 입을 거예요. 군대에서 이 문제 하나만 해결해도 수행생활 10년 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얻게 될 겁니다.성경에 이런 말이 있어요. '5리를 가자 하면 10리를 가주어라' 5리를 억지로 끌려가지 말고 10리를 가주는 마음을 내면 괴로움이 없어진다. 군대에 끌려와서 억지로 시키는 대로 하면 내가 노예가 되지만, 군대 온 것을 나에게 유리하도록 적극적으로 전환시키면 내가 주인이 됩니다." 책 속에 이 구절이 저의 눈을 멀게 하고 저의 귀를 멀게 했습니다. 29살 이등병에게 21살 선임의 집요한 괴롭힘은 너무나 저를 힘들게 했지만, 이 구절을 읽는 순간 깜깜한 동굴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발견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화가 안 나는 내가 되어보는 연습을 해보라니… 선임을 내 인격 수양을 시켜주는 코치로 생각해보라니… 지금까지 한 번도 제가 생각해본 적이 없는 문제 해결법이었습니다. 제가 유일하게 희망의 빛으로 여겼던 것은 21살짜리 선임의 전역 날이었습니다. '저 친구가 전역하는 순간 난 해방이다' 이 생각밖에 못했습니다. 그러나 법륜스님의 글을 읽고 나서 진정한 해방은 저 친구가 전역하는 날이 아니라 저 친구에 대한 나의 불만을 내려놓는 날이구나 하는 깨달음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저의 군생활은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나를 못살게 구는 이런 사람과도 어떻게 좋은 관계로 전환할 수 있을까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내 생각을 내려놓고 저 선임이 하라는 대로 한번 해보자. 앉으라면 앉고, 서라면 서고, 노래하라면 노래하고, 때리면 맞고, 그 선임이 어떻게 해도 그 선임한테 화가 안 나는 내가 되어보자!" 이렇게 마음을 먹고 나니 얼굴에 웃음이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가끔씩 또 욕이 날라오면 마음이 무거워지지만, 그때마다 "어, 또 내가 경계에 걸려서 넘어졌구나!" 하며 제 모습을 점검하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화가 나면 바로 알아차리고, 제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아, 내가 이럴 때 화가 잘 나는구나' 제가 어떤 말에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체크해보니까, 그런 말을 들을 때 마다 더 조심하게 되더라구요.
선임도 저의 변화된 모습을 눈치 챘는지 저에게 웃음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선임이 라면을 먹고 싶다 하길래 PX에 달려가서 라면을 싹 대령해드렸더니, "야, 너 정말 많이 변했다" 하며 칭찬을 해줍니다. 내일 휴가를 나간다고 하길래 전투화를 반짝반짝 닦아드리고, 전투복에 칼각을 잡아드렸더니, "어쭈~" 하며 웃습니다. 지적을 할 때마다 제일 먼저 "예, 죄송합니다"부터 했더니 더 이상 잔소리를 하지 않는 겁니다. 이렇게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저의 군생활은 점점 행복으로 변해갔습니다. 저를 안 좋게 봤던 병장들도 "형~" 하며 농담을 던집니다. 제가 경직된 자세로 "왜 그러십니까. 여기는 군대입니다. 형이라고 절대 부르지 마시지 말입니다" 했더니, "형, 나는 다음달에 전역이야. 민간인으로 봐달라구" 하며 사적인 자리에서는 존댓말을 쓰겠다고 합니다.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 처음에 오해가 있었던가 봅니다. 우리 부대에 저보다 앞서서 이곳에 온 29살짜리 이등병이 있었는데, 그 친구는 나이 대우를 안 해준다고 선임이랑 한 판 싸워서 하극상으로 영창을 다녀왔다고 합니다. 그 친구는 끝끝내 아무도 건들지 못했고 그 때문에 부대에 계급 질서가 많이 무너졌기 때문에, 이번에 새로 들어온 29살짜리 이등병은 초반부터 군기를 잡아서 족쳐 놓아야 한다는 모종의 결의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아휴~ 이런… 제가 바로 그 타켓이 된 것이지요. 하지만, 저는 법륜스님의 말씀을 나침반 삼아서 어려운 공격들을 지혜롭게 대처했고, 나중에 선임들과 좋은 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