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집 박물관18세기 영국 귀족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노시경
이 1호집 박물관은 제인 오스틴(Jane Austen)의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 <설득(persuasion)>에서 여자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을 찾아 열심히 뛰어가던 곳이다. 영화 속에서도 석재를 가지런히 깐 인도가 비로 젖어 있었는데 내가 로열 크레슨트를 찾은 날도 바닥이 온통 비로 젖어 있었다. 내 머리 속에는 그리 예쁘지 않지만 연기를 참 잘 했던 주연 여배우의 얼굴이 로열 크레슨트 위로 스쳐 지나갔다.
영화 속에서는 18세기 당시의 귀족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이곳에 드문드문 서 있었지만 현재 이곳에는 내리는 비 속에 금발의 어린 소녀 1명만이 지나고 있을 뿐이다. 영화 속 배경이 되었던 로열 크레슨트의 외관은 당시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함이 없다.
우리는 1호집 박물관의 현관 입구에 있는 철구조물에 관심이 갔다. 계단을 다 올라간 지점의 양 끝에 검은색을 칠한 철구조물이 바닥에 박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전혀 보지 못했던 물건이다.
궁금증이 많은 신영이가 먼저 물었다.
"엄마! 바닥에 박힌 저게 뭐지?""분명히 신발하고 관련이 있을 것 같아. 아마 신발털이일 거야."아내는 언제나처럼 자신 있게 말하며 자기 신발을 그 위에 직접 갖다 대 보았다. 언제나 신중한 나는 영국에 사는 한국인 친구에게 저게 뭐냐고 물어보았다. 답은 역시 신발에 묻은 흙을 터는 신발털이였다.
로열 크레슨트 바로 앞의 낮은 언덕에는 푸른 잔디밭이 펼쳐져 있었다. 약한 빗줄기 속의 조용한 잔디밭에는 깊은 멋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이 언덕 위에서는 바쓰의 거리도 내려다 보였다. 로열 크레슨트의 집 안에서 내려다보는 전망이 훌륭할 것이다. 나는 로열 크레슨트 한 집의 초인종을 눌러보고 싶은 강한 욕망을 느꼈다. 나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차 한 잔을 차분히 마시며 빗 속의 바쓰 시내를 내려다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