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만강표지석
이정근
번민의 밤이 지속되었다. 잠을 이룰 수가 없다. 두만강 너머로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모든 혐의를 자인한 꼴이 되어 역사에 기록된다. 그것이 두려웠다. 하얗게 밤을 새운 정종이 수하 군사를 데리고 이행검을 찾아갔다.
"상의할 일이 있어 찾아왔습니다.""일 없소. 돌아가십시오."이행검의 반응은 냉담했다.
"상생의 방법을 찾아보고자 왔습니다. 둘이 가만히 앉아서 죽을 수야 없지 않습니까?""인명은 재천이오. 하늘이 내 목숨을 거두어 가겠다면 무슨 토를 달 수 있겠소.""없는 말을 지어내어 맞추자는 것이 아닙니다.""맞추어도 거두어 가겠다면 가져갈 것이고 맞추지 않아도 가져가지 않겠다면 안 가져 갈 것이오. 나는 이미 마음을 비웠으니 돌아가시오."열불이 난 정종이 신발을 신은 채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칼을 뽑은 정종이 내리쳤다.
"으윽!"비명소리와 함께 이행검이 쓰러졌다.
"이 버러지 같은 놈을 묶어라."정종이 수하 군사들에게 명했다. 밖으로 끌려나온 이행검을 향하여 또 한 번 내리쳤다. 맞았던 자리를 또 다시 가격당한 이행검이 꼬꾸라졌다.
평소 정종은 이행검을 곱게 보지 않았다. 북경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수양을 요동까지 나아가 꼬리를 흔들던 강아지. 사사 말(馬)을 제공하며 아양을 떨던 소인배. 명하지도 않은 호종부사를 자청하여 수양의 눈도장을 받았던 졸무(拙武). 그 공으로 어느 날 갑자기 연줄을 타고 경성 도진무로 내려온 낙하물. 묵묵히 변방을 지키던 직업군인 정종으로서는 가까이 하기에는 경멸스러운 무관이었다.
"길주에서 여기까지 이징옥을 데리고 온 네놈 체면 때문에 역적을 도륙내지 못하고 부역한 내 자신이 한스럽지만 네놈 탓은 안하겠다. 단, 없는 말을 지어내어 나를 끌고 들어가려 할 때는 설혹 내가 혐의를 벗지 못하고 죽는다 해도 내 영혼이 네놈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이행검을 또 한 번 내리쳤다. 칼등으로 맞았지만 통증이 심했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이행검을 발길로 걷어 찬 정종이 휘하 군졸들을 데리고 가버렸다.
묶여 있는 이행검을 발견한 그의 모친은 대성통곡했다. 함께 손을 맞잡고 살길을 궁리해도 시원치 않을 텐데 '네 탓', '내 탓'하고 있으니 기가 막혔다. 우선 매 맞은 아들이 억울했다. 편지를 썼다. 한성으로 떠나는 종자에게 '명례궁 안방마님에게 꼭 전하라'며 신신 당부했다. 수양대군 부인과는 친정으로 줄이 닿아 있었다.
수양이 함길도 관찰사 성봉조에게 유시했다.
"이징옥을 죽인 이행검을 정종이 대도(大刀)로 구타하고 결박하여 병이 나기에 이르렀다 하니 어찌된 영문인가? 그 아우 이양검을 보내어 구료하게 하니 경이 증세에 따라 약을 주도록 하라. 또 이행검과 정종은 이징옥을 잡아 죽이는데 공이 있는 자이니 유언비어를 좇아 경박하게 곤욕을 주는 것은 옳지 않다. 경은 이 뜻을 알아서 구타한 이유와 그 상처를 조사햐여 계문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