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산강변 소통보드 프로포즈로 결혼에 골인하게 된 박규태(30)씨와 유미정(28)씨. 이들은 로맨틱한 청혼처럼 결혼식도 크리스마스 이브인 12월 24일에 올릴 예정이다.
김상현
포스코 포항제철소 후판부 박규태(30)씨는 지난 7월17일 해도동 소통보드를 통해 최초로 프로포즈한 주인공이다. 13일 박씨의 휴대폰에 전화를 걸었다. 가수 조성모의 '결혼해 주겠니'라는 달콤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 통화연결음만으로도 프로포즈가 성공했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날은 안개가 너무 많이 끼어 흠이 됐습니다. 그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지만 여자친구는 그 자리서 바로 내 청혼을 받아 줬습니다. 고마웠습니다. 오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결혼식을 올립니다. 사귄 지 6달 만입니다. 소통보드가 한몫해 준 덕분입니다."
박씨는 매우 즐거워했다.
포항의 '소통보드'는 젊은 연인들만 연결시키는데 그치는 것도 아니다. 미혼남녀뿐만 아니라 중·노년 부부의 이벤트도 활발하다. 선우 건씨는 지난 2일 "선우건♥이인숙 결혼10000일! 오래오래 행복하게♥"라는 멘트를 올려 27년 부부의 정을 세상에 자랑했다.
지난 5일 밤에는 "20년 전부터 계속 사랑해요 수빈씨"라는 소통보드의 짧은 문구가 사람들의 눈길을 붙잡았다. 이 문구를 올린 주형진(50·가명)씨는 "결혼 20주년을 맞아 재밌는 글로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고 전했다.
이 소통 보드가 프로포즈나 사랑 고백에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생일·결혼기념일·전역 축하뿐만 아니라 사과, 수능 기원, 행사안내 등에도 사용된다. 재미있는 사연도 많았다.
이은영(25·포항)씨는 지난 9월 "연주야 우리 꼭 살 빼고 성공하자"는 메시지를 소통보드에 새겼다. 이씨는 "친구와 날마다 운동을 하자는 약속의 표현이었다. 지금도 운동은 진행중"이라며 "그때 찍어둔 소통보드 동영상을 휴대폰에 저장해 친구와 함께 자주 본다. 그때마다 다짐을 새롭게 하게 된다"고 했다.
수능시험 하루 전이던 지난 9일 밤에는 포항고 3학년 담임선생님들이 "포항고 수험생의 수능 대박을 기원합니다"라는 응원글을 올려 제자들에게 힘을 보탰다.
그외에도 자녀들이 부모님 생신을 축하하며 사랑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고, 기업·관공서가 외지 혹은 외국 손님을 환영하는 글을 올리기도 한다.
포항시청 국제협력단 송순애 담당은 "중국인 손님을 위해 글을 자주 올린다"며 "그러고 나면 `뜻밖의 환영 인사에 감사한다`면서 그 자판과 포스코 야경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게 되는 일이 잦다"고 전했다.
이를 운영하는 포스코 관계자는 "소통보도가 설치된 곳은 형산강과 바다가 합쳐지는 지점이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남녀가 만나는 상징적인 의미도 있어 프로포즈 신청이 특히 많은 것 같다"고 했다.
13일까지 두 소통보드를 이용한 사람은 약 490명. 소통보드를 이용하려면
'sotong@posco.com'으로 이름, 연락처, 메시지, 게시희망 일시를 해당 날짜 2, 3일 전에 보내면 된다. 별도의 신청 비용은 없다.
안 그래도 지금은 누구 없이 소통을 강조하는 시대다. CEO들은 '소통경영'을 얘기한다. SK 이만수 감독은 소통을 기본기에 버금가는 키워드로 꼽기까지 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소통을 외치고 박원순 서울시장이 소통을 강조하는 이유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IGM(세계경영연구원) 협상스쿨 최철규 원장은 "소통은 당근과 채찍으로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다"고 말한다. 그는 "소통은 상대가 스스로 움직이고 싶게끔 만드는 고도의 전인격적인 작업"이라고 했다.
그는 "아이가 공부하지 않으면 대개의 부모는 성적이 오르면 용돈을 더 주겠다고들 한다. 그 전에 아이의 '꿈'을 물어야 한다"며 "공부의 필요성을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이 진짜 소통이다"고 했다.
그렇다. 남녀 사이에도, 부모 자식 간에도, 친구나 동료끼리도 진심이 담긴 소통이 필요하다. 포스코의 '소통보드'로 올리는 글은 몇 자 안 되지만 '진짜소통'을 이뤄주는 한 방법이다. 당장 소중한 사람에게 말로 할 수 없었던 가슴 속 깊은 마음을 꺼내자. 오늘 막 수능을 마친 아들·딸에게 "이제 세상에 나가 실수와 창피함, 좌절도 많이 경험해 보아라"고 전하는 것은 어떨까.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경북매일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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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에서 '진짜 소통' 하는 방법을 알려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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