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황석영 기록, 1985).
결국 설갑수씨는 광주의 이재의씨에게 도움을 청했고, 이씨는 강정채, 김성종 등 광주지역 재야인사들과 함께 <광주일지> 판권 인수와 재출판 작업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이재의씨는 13일 <오마이뉴스>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개인들의 노력과 희생에만 의존해서 책을 출판하는 것은 이제 한계가 명확하다"며 "<죽음을 넘어...> 영문판은 국내판과 더불어 5·18 현장에 대한 가장 소중하고 생생한 기록물이기 때문에 어떤 기록물보다 공적인 기관의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죽음을 넘어...>는 단지 대한민국 특정 지역, 특정 정치상황 하에서 발생한 우발적인 사건을 넘어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려는 처절한 투쟁에 대한 인류사의 보편적인 기록물"이라며 "오늘날 신자유주의가 세계 도처에서 약탈적인 사태를 노정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광주일지>는 결코 절판되어서는 안 될 세계 인류사의 소중한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광주의 피 묻힌 미국 정책 결정권자들"... '미완의 진실'로 남은 '5·18'<광주일지>는 <죽음을 넘어...>를 단순 번역만 한 것이 아니다. 우선 <한국전쟁의 기원>을 쓴 한국현대사 연구의 권위자 브루스 커밍스 교수가 장문의 서문을 썼다. 한국 상황에 어두운 외국인들이 5·18 민주화운동의 배경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특히 그는 5·18 민주화운동을 '한국의 천안문 사건'으로 규정하면서 전두환 정권의 광주시민 학살에 개입한 미국 정책 결정자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광주항쟁에 대한 미국의 반응은 나에게 한국전쟁 이후 현재에 이르는 기간 동안 가장 구역질나는 위선과 기회주의와 인종주의의 표현이었으며 미국이 표방해 왔던 민주주의 이상에 대한 최대의 배신이었다. 미국인들은 (1989년 6월 천안문 사태 진압 과정에 대한 비판과 달리) 미국이 직접 진압에 관여했던 광주항쟁에 대해서는 대부분 침묵을 지키고 있다."커밍스 교수는 또 <저널 오브 커머스> 기자였던 팀 셔록이 1996년 정보공개법에 의해 획득한 광주항쟁 관련 비밀해제 문건을 언급하면서 "미국은 최고위 정책 결정 과정에서 명백히 전두환과 그 일당을 지지하기로 했다"며 "광주에서 살해되거나 고문당한 젊은이들 수백 명의 피를 그들 손에 묻혔다는 것이 명확하다"고 말했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는?
|
<광주일지>의 한국어 원본인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는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최초의 종합적인 현장보고서다. '광주전남민주주의청년연합'의 비밀 프로젝트로 1985년 출간됐다. 기독교계로부터 자료 수집 및 출판 비용 일부를 지원 받고, 대표 집필자인 이재의, 조양훈과 보조자 10여명이 참여, 6개월에 걸쳐 비밀리에 작업이 진행됐다. 200여 명의 항쟁 참가자 등의 인터뷰를 비롯해 광주시민들이 참여한 공동의 결과물인 셈이다. 집필 완료된 기록물을 작가 황석영에게 의뢰하여 감수한 뒤, 그의 이름으로 펴냈다.
출판 당시 당국으로부터 '불온서적'으로 지목돼 수차례 압수되는 수난을 겪으면서도 약 1백만 부 이상 읽히는 지하 베스트셀러 서적으로 알려졌다. 이 책이 출간되면서 광주항쟁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범국민운동이 전개되기 시작했고, 1987년 6월 항쟁의 가장 큰 원동력이 됐다. 이 책은 원본 그대로 1986년 일본의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가 일어본으로 번역 출판하기도 했다. (<광주일지> 재출판 제안서 참고)
|
<광주일지>가 <죽음을 넘어...>와 다른 또 다른 특징은 바로 팀 셔록의 기고문 '워싱턴의 시각'(The view from Washington)이 추가됐다는 점이다. 셔록은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미국 국무성의 비밀문서 '체로키파일'을 집요하게 추적해 미국의 개입 전략을 최초로 알린 인물이다. 특히 셔록은 기고문에서 아직 완전히 드러나지 않은 5·18 민주화운동의 진실이 '워싱턴 지하창고'에 묻혀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러한 기록 어느 것도 미국 관리들이 특수부대가 광주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고 갈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알았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공수부대가 전두환이 자행한 진압에 사용된 것을 카터 행정부가 인지하지 못했다는 공식입장과 모순된다. 중요한 점은 나의 정보공개 요청을 검토한 미 정부 부처 간 협의체는 국가안보상의 이유로, 광주와 연관된 위컴 주한미사령관과 그 한국 카운터파트와의 회합 내용, 사령관과 미국 정부 간의 통신내용 공개를 거부했다는 점이다." 설갑수씨는 "<광주일지>에 대한 관심이 독립적 연구로 이어져, 미국이 아직 공개하지 않고 있는 국방성, CIA, DIA(국방부 정보국)의 광주항쟁 자료를 공개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미국의 한국 현대사에 대한 역할을 균형적이고, 포괄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
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공유하기
"밖에선 <죽음을 넘어~> 영문본 절판 안에선 '교과서 5·18 제외', 참담하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