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점심 할머니컴퓨터 속 자기 사진을 바라보는 조점심 할머니
최성규
엉덩이가 의자에 닿기도 전에 말을 하는 개구쟁이 조점심 할머니. '애말이요'는 '내 말 좀 들어보시오'라는 뜻의 사투리다. 그러고선 내가 올린 기사 때문에 조점심 할머니 집안에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단다. 가금씩 <오마이뉴스>에 올리는 시골 보건소 이야기를 어떻게 아셨을까?
소동의 시작은 이랬다. 지난주에 순천 사는 사위분이 장모님(조점심 할머니)께 들렀다. 허리가 아픈 사위에게 조점심 할머니는 보건지소를 추천했다. 그런데 사위분이 어쩌다가 내 진료기록부를 봤던 것이다. 진료 중 에피소드가 될 만한 이야기를 기록부에 적어놓는 내 습관이 들통 났다. 사위분은 혹시나 싶어 집에 돌아가 검색해 보니 새 구두를 신은 조점심 할머니의 모습이 딱 뜨더라는 것이다. 미국 사는 딸이 사준 구두를 신고 좋아하는 에피소드였다(관련기사 :
딸이 미국서 사온 파란 구두를 신었습니다)
"우리 딸들이 나를 봤다네. 인터넷인가 뭔가서. 엄마 사진 나왔다고 자랑을 하고 야단이야. 미국사는 딸한테도 연락이 왔는데 보건소 연락처 좀 알려달라 그러네. 인사 한다고." 어머니 사는 모습이 인터넷 신문에 나오니, 그네들에게는 신기하면서도 고맙게 느껴졌나 보다. 조점심 할머니의 이야기는 점점 딸에 대한 내용으로 기운다. "딸이 인물은 인물"이라며 이번에 동료 교수들과 함께 무슨 대상을 타게 됐다고 한다. 그녀도 역시 '딸바보'였다.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주연의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가 떠오른다. 자식 자랑에 인생은 아름답다.
"이리 기분이 좋아서, 내가 빨리 죽으면 안 되겠어."
조용히 침상을 지키던 고운 곽봉희 할머니도 한마디 거들었다.
"이런 것도 자슥들이 알아야 돼. 우리가 어떻게 살고, 어디가 아픈지 좀 봐야된당께." 해바라기였던 남편이 고개를 숙인 뒤...한방 간호사 선생님이 이번에는 곽봉희 할머니가 인터넷 신문에 나올 차례라며 웃음 지었다. 생각해보니 동갑친구가 나란히 나오면 좋을 것 같다.
다시 한 주가 지났다. 이번엔 조점심 할머니 혼자다. 단짝 집에 갔더니 아무도 없어서 혼자 왔는데 "아마 광주를 갔을 것"이란다. 어디 아프신가? 전날 두 분이 고흥 읍내 안과를 갔다. 곽봉희 할머니 눈 하나가 안 좋아 수술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다. 한 번 수술했는데도 불효자는 계속 말썽이다.
"고흥에서는 힘드니까 광주 정도는 가야된다고 했거든." 곽봉희 할머니는 혼자 산다. 공무원인 남편은 해바라기였다. 그리움이라는 꽃말처럼 아내만을 바라봤다. 18년 전에 그가 은퇴했는데 남양마을 목 좋은 곳에 슈퍼를 하나 차렸다. 코흘리개 꼬마들은 이곳을 제집처럼 드나들었다. 하지만 8년 전, 해바라기는 해를 더는 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슈퍼도 문을 닫았다. 대신 화분들이 집 앞을 지킨다. 양아욱이라고 하는 제라늄, 마, 칼라 벤저민 등이 자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