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병통치 '자석요'...돈도 벌게 해 준다고?

[연재소설 - 하얀여우 3] '재회' ...날나리 같은 인호

등록 2011.11.11 17:43수정 2011.12.13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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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얼굴 한번 보죠. 저 강남에서 선배들과 함께 사업 하고 있어요. 한 번 놀러 와요."


94년 봄, 인호한테 전화가 왔다. 약5개월 만이었다. 제대 직후엔 하루가 멀다 하고 서로 전화 하다가 어느 날인가 부터 뜸 해졌고 그러다가 다섯 달 전부터 연락이 뚝 끊겼었다.

"인호야 그동안 어떻게 지냈니? 그새 어떻게 사업을 벌였어? 재주 좋다."
"좀 됐어요. 교회에 다니는 선배들하고 조그만 사무실 하나 냈어요."

반가운 마음에 꼭 한번 놀러 간다고 하자 아예 날짜를 잡자고 했다. 2박 3일 놀다 갈 각오를 하고 오라며 잔뜩 폼을 잡았다. 그 말을 들으니 은근히 기대감이 들었다. 이 녀석이 무엇인가 굉장한 일을 벌였구나 하는. 마침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잠시 쉬는 중 이어서 전화 통화를 한 다음날 만나기로 약속을 해 버렸다.

서울 양재역 부근이었다. 인호가 버스 정류장 까지 마중 나와 있었다. 베이지색 양복에 줄무늬 넥타이. 어딘지 모르게 약간 '날티(날나리티)'가 나는 모습이었다. 수더분한 인상이던 예전의 인호와는 약간 달랐다.

반갑게 악수하고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이 으레 하는 상투적인 인사말을 주고받으며 사무실로 향했다. 인호 말투가 이상했다. 미리 연습한 대사를 읊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형 저하고는 생사고락을 함께한 전우입니다. 그렇죠?"
"전쟁터를 다녀오지도 않았는데 뭔 생사고락 이야...그냥 함께 고생한 사이지."
"그런가요! 어쨌든 저 믿지요. 꼭 믿어 주셔야 합니다."
"그래 내가 널 왜 못 믿겠어, 근데 너 왜 이렇게 심각하냐?"

인호가 일하는 사무실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넓었으며 사람들도 많았다. 걸어오는 동안 작고 아담한 사무실을 상상했었다. 난 인호 말투가 어째서 이상 했는지 몇 시간 후에 알 수 있었다.


"영업 방식만 다를 뿐입니다. '거상산업'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회사입니다. 사람을 잡으십시오. 이 사업은 황금어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한테나 권할 필요는 없습니다. 은혜 입은 사람에게 권하십시오. 부모 형제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이곳에 데려오기만 하면 됩니다. 3일만 이곳에서 교육을 받으면 모두 성공 할 수 있습니다. 제대 한지 얼마 되지 않은 분들은 전우들을 모셔 오십시오. 죽음을 함께한 전우야 말로 1차 포섭 대상입니다."

강사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한 제품은 '자석요'였다. 거의 만병통치약 이라고 설명했다. 너무 귀한 물건이라 시중에 내놓고 팔수 없어서 이런 방법을 쓴다고 했다. 그렇다. 바로 말로만 듣던 다단계(피라미드) 회사였다. 인호는 강사에게 배운 대로 내게 어설픈 멘트를 날렸던 것이다. '생사고락을 함께한' 어쩌구 하는.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아차 싶었다. 함께 군대 생활을 한 전우들 얼굴도 보였다. 물어보나 마나 인호가 데려온 것이다. 반가워 할 틈도 없이 난 빠져나갈 궁리를 해야 했다. 피라미드의 악명을 풍문으로 들어 이미 알고 있던 터였다.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검은 양복을 입은 덩치들이 앞을 막아섰다. 인호는 소문과는 다르니 반나절만 들어 보라며 팔을 잡아끌었다. 참으로 난감한 순간이었다. 여자도 가세했다. 인호와 같은 교회를 다닌다는 여자가 몸으로 막아섰다. 이렇게 해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피라미드 교육을 받게 됐다.

인호와 약속한 반나절이 지났다. 더 들어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강사 입에서 나온 얘기는 구멍이 숭숭 뚫린 우격다짐 논리였다. 대충 이렇다.

"일단 '자석요' 를 하나 사면 거상 산업 직원이 되어 판매권을 갖게 됩니다. 단순히 물건만 파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사람을 인도해서 영업 사원을 만들어야 합니다. 영업사원이 버는 수익금 중 일부는 인도한 사람에게 지급 됩니다. 그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데려 와서 영업 사원을 만들면 수익금 중 일부가 또 최초 인도자에게 쌓이게 되고요.

일단 매출액 1000만원만 넘으면 에이전트(agent) 가 돼서 수익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4명만 모셔 와서 자석 요를 사게 하면 됩니다. 이런 식으로 인맥이 쌓이다 보면 언젠가는 가만히 앉아서 큰  돈을 벌 수 있습니다. 그 인맥 구조가 피라미드 모형 같다고 해서 피라미드라고 하는겁니다"

이해 할 수 없는 말이었다. 제품이란 것은 일단 사람에게 필요하고 가격이 적당해야 판매가 이루어지는 법이다. 자석요 값은 보통 3백 만 원 정도였고 종류에 따라 4백~5백만 원 하는 것도 있었다. 눈이 튀어 나올 정도로 높은 가격이었다.

강사는 만병통치약이라고 하지만 질병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어떤 발표도 없는 상황 이었다. 이 두 가지만 가지고도 강사 얘기가 구멍이 숭숭 뚫린 엉터리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 자석 요는 강매 하지 않는 한 절대로 팔리지 않을 제품이었다.
#하얀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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