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에게 차별과 왕따를 경험했던 자나닐라 가족. 한국을 미워했던 이들 가족이 좋은 한국 사람들을 만나면서 은혜의 땅으로 여기게 됐다.
조호진
"저에게 한국은 희망의 땅이자 은혜의 땅입니다!"한국에 대한 사랑을 고백한 스리랑카 여성 자나닐라(37·가명). 고운 말씨와 수줍은 모습에선 조선 여성의 자태마저 풍긴다. 눈빛 반짝이는 그에게 '곱다'고 했더니, 그 말을 단번에 알아들을 정도로 한국어 실력이 출중하다. 이해력은 물론 구사력까지 갖췄다. 고운 웃음을 흘리는 그가 한국 여성과 다른 점이 있다면 검은 피부가 전부일 것이다.
그는 대학생이던 1997년, 스물넷의 나이에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첫발을 디뎠다. 그리고 13년 동안 한국에 살면서 같은 나라 출신 이주노동자 스루랄(35·가명)을 만나 결혼했고, 두 아이도 한국에서 낳았다. 꽃다운 청춘을 보낸 한국은 그에게 타국이 아니라 인생 2막을 준비하는 희망의 땅이다. 물론 그 희망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불안하고 두려운 터널을 헤쳐 나가야 한다. 이들 부부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다.
그의 한국 생활은 바쁘다. 큰딸 미놀(6)이와 작은아들 새놀(4)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뒤 설거지와 집안청소를 서두른다. 신학생인 그는 집안일이 마무리되면 신학대학에 공부하러 간다. 지방에서 일하는 남편은 일 주일에 한 번, 토요일 오후에 집에 온다. 때문에 자나닐라와 아이들은 주말을 손꼽아 기다린다.
'코리안드림'을 품고 한국에 온 자나닐라. 그 또한 다른 이주노동자들처럼 차별과 냉대를 당했다. 자신만 당했으면 억울하지도 않았겠지만 자녀들까지도 그 아픔을 경험해야 했다. 대를 이어 당한 차별에 속이 상해 울기도 했지만 참고 견뎌야 했다. 고향에 돈을 부치지 못하면 가난한 친정 어머니는 살길이 막막해지기 때문이다. 참아야 하는 아픔,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한국에 대한 미움이 자랐지만, 다행하게도 좋은 한국 사람들을 만나면서 미움은 시들고 대신 사랑이 싹텄다.
자나닐라 가족에게 '이주민의료센터'는 피난처와 같다. 아이들이 아프면 데려가 무료진료를 받고 환절기가 되면 백신 예방주사를 놔준다. 그의 세심한 돌봄 때문인지 아이들은 기관지 질환 외에는 큰 병을 앓지 않았다. 무료진료 도움뿐이 아니다. 두 아이들은 이주민 자녀를 위해 설립된 '지구촌어린이집'을 무료로 다닌다. 왕따 걱정과 학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학령기가 되면 '지구촌국제학교'에 입학시킬 예정이다. 이주민 자녀를 위해 세운 이 학교 또한 전액 무료다.
자나닐라 가족에게 이주민의료센터를 운영하는 (사)지구촌사랑나눔(대표 김해성 목사)은 희망의 원천이다. 무료진료와 자녀교육은 물론 자신의 꿈까지 돌봐준다. 목회자를 꿈꾸는 그는 2년 정도 신학공부를 더한 뒤에 고국으로 돌아가 선교사로 봉사할 계획이다. '코리안드림'을 통해 번 돈으로 고향에 돌아가 잘 살고 싶었던 그가 인생의 방향을 바꾼 것은 한국 사람들에게서 '나눔의 힘'을 봤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한국에서 도움을 받고, 배운 후원의 힘을 스리랑카에 돌아가면 알리고, 그 씨앗를 뿌리고 싶다고 말하는 자나닐라.
"한국은 처음에 살기 어려운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좋은 한국 사람들을 만나면서 희망의 땅이 됐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화도 잘 내지만 정도 많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무료병원에 다니면서 한국의 힘을 봤습니다. 자신과 전혀 상관 없는데도 알게 모르게 돕는 수많은 후원자의 힘으로 병원이 운영되고, 아이들이 무료로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저도 스리랑카로 돌아가면 후원의 힘과 사랑의 힘을 전하고 싶습니다."[풍경 ②] 돈 벌러 온 한국에서 아들 잃을 뻔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