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좌빨'이라 부를 때 쫄면 지는 겁니다"

[강신주의 철학 고전읽기 ④]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탐구>

등록 2011.11.10 19:59수정 2011.11.10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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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신주 박사가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강의실에서 '철학 고전읽기' 강의를 하고 있다.
강신주 박사가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강의실에서 '철학 고전읽기' 강의를 하고 있다.권우성

"모든 권력, 혹은 권위적인 사람들은 단어를 통일해서 쓰기를 원합니다. 군대에 가면 '-다'와 '-까'로 끝나는 말만 하라는 얘기가 있지요? 언제든지 하급자가 하는 말을 상급자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하라는 애기인데, 그러면 우리가 할 수 있는 말 자체가 무척 한정되어 버립니다. 반대로 우리가 여러 가지 문맥을 폭발시켜서 단어를 다양하게 사용한다면 권력은 우리를 함부로 하지 못하게 되는 셈입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가 없이는 생각도 불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언어를 잃어버리면 생각도 잃고 그 지점에서 내 삶도 끝나는 것이지요."

'모든 철학적 질문들을 잘못된 언어 사용에 의해 생기는 질병으로 생각했던 천재 철학자'. <철학 VS 철학>의 저자 강신주 박사는 20세기가 낳은 걸출한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을 이렇게 정의했다. 강 박사는 지난 7일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오마이뉴스> 강의실에서 열린 '강신주의 철학 고전읽기' 수업에서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에 대해 강의했다.

강 박사는 비트겐슈타인의 후기 사상을 다룬 <철학적 탐구>를 교재로 열린 이날 강의에서 "언어가 가진 가능성과 한계를 가장 극단까지 사유했었던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의 목적이 파리에게 파리통에서 빠져나갈 출구를 가리켜 주는 것에 있다고 말했다"며 "여기서 파리가 우리 인간을 상징한다면 파리통은 언어를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비트겐슈타인을 읽을 때는 그가 언어에서 문맥을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는 점과 언어는 절대적이지 않다는 점을 깨우쳐준 철학자임을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침묵하라' 말한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두 권의 책으로 논리학과 수학 철학, 언어 철학 전반에 걸쳐 뚜렷한 족적과 업적을 남긴 오스트리아 출신의 철학자다. 그는 서른 두 살에 쓴 <논리 철학 논고>로 세계에서 가장 저명한 철학자가 되었는데 그의 이론은 당시로서는 너무나도 획기적인 것이라 당대의 내로라 하는 철학자들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심지어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비트겐슈타인의 철학박사 학위 심사를 맡았던 교수가 보고서에 "내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논리 철학 논고>가 철학 박사 학위를 수여받기에 충분한 저작이라는 점은 명백하다"라고 쓴 일화는 유명하다.

<논리 철학 논고>는 비트겐슈타인이 쓴 저서 두 권으로 그의 사상을 전기와 후기로 나눌 때 전기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비트겐슈타인은 이 책에서 기존의 철학들이 제기하는 철학적 문제들이 모두 언어의 논리를 잘못 적용한 데서 생겨났다고 비판하고 있다.

강 박사는 "<논리 철학 논고>는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을 논리적으로 구분해 놓은 책"이라며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만 한다'는 말로 책을 맺으며 모든 철학적인 문제들에 대한 본질적인 답을 찾았다는 이유로 철학을 그만두고 다른 직업을 찾았다"고 설명했다.


"모든 사람이 비트겐슈타인의 <논리 철학 논고>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고 그저 추앙할 때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스스로 깨닫고 기존의 이론을 수정한 <철학적 탐구>를 썼습니다. 그는 실제 생활에서 쓰이는 언어는 같은 단어라고 할지라도 문맥에 따라 그 뜻이 달라진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적 탐구>를 통해 우리를 사로잡는 혼란들은 언어가 헛돌고 있을 때 일어난다고 지적했지요."

비트겐슈타인은 <논리 철학 논고>에서 언어와 명제, 이름이 각각 세계와 사실, 대상과 실제 대응 상태에 있다는 '그림 이론'을 주장했다. 언어를 일대일 대응하는 이름들과 명제들로 구성된, 세계를 묘사하는 한 폭의 그림으로 설명한 것이다. 반면 그는 <철학적 탐구>에서는 이 '그림 이론'과는 달리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언어의 쓰임에 집중하고 있다.


논리적으로 볼 때 각각의 사물과 언어는 일치하지만 우리의 삶에서는 언어 이전에 그를 포괄하는 생활 양식이 존재하기 때문에 동일한 언어라고 할지라도 사용되는 맥락에 따라서 의미가 달라진다는 얘기다. 두 권의 책은 철학의 문제가 곧 언어의 문제라는 인식틀을 갖지만 세부적인 언어관에서 차이를 보이는 셈이다. 강 박사는 "칸트에 와서 개개인의 마음에 주목했던 서양 철학의 흐름이 20세기에는 언어로 흐르고 있다"며 "어떤 언어체계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세계는 다르게 구성된다"고 말했다.

"'초딩'이라는 말에 발끈하면 지는 것"

그렇다면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은 21세기 한국사회에 어떤 함의를 가지고 있을까? 강 박사는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는 절대적이지 않으며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문맥을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뒤집어 말하면 제대로 된 언어 사용을 위해서는 다양한 문맥을 감지하는 감수성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요즘 인기인 '나는 꼼수다'를 보면 김어준씨가 한참 이명박 대통령을 공격하다가 '각하는 결코 그럴 분이 아니다'로 마무리합니다. 여기서 마지막 문장만 놓고 본다면 김어준씨는 이명박 대통령을 옹호하는 사람이지만 문맥적으로 파악하면 누구나 그가 한 번 더 뒤집어서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지요. 이런 문맥적인 언어 사용은 사람들에게 묘한 느낌과 함께 재미를 줍니다."

 수강생들이 강신주 박사의 강의를 수강하고 있다.
수강생들이 강신주 박사의 강의를 수강하고 있다.권우성

그는 또한 '사랑해'나, '좌빨', '초딩' 등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표현들을 예로 들며 "언어에는 절대적인 의미가 없다"고 설명했다.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정치적 성향을 판단하거나 하는 일들이 철저히 개인적이고 상대적인 기준에 의한 것이니 '쫄거나' 발끈'하지 말고 유연하게 받아들이면 된다는 지적이다.

강 박사는 "누군가 당신을 지칭하며 '좌빨'이라는 단어를 공공연하게 사용한다면 그것은 '좌빨'이라는 단어가 우리 사회에서 갖는 역사적 의의로 미루어 볼 때 '너의 생각이 있어도 말하지 말라'는 의미"라며 "비트겐슈타인의 입장에서는 언어가 곧 생각인데 '좌빨'이라는 말을 듣고 위축되고 자기 검열이 시작되면 자신의 삶을 유지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강 박사는 "모든 권력, 혹은 권위적인 사람들은 단어를 통일해서 쓰기를 원하는데 그렇게 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말 자체가 무척 한정되어 버리기 때문"이라며 "반대로 우리가 여러 가지 문맥을 폭발시켜서 단어를 다양하게 사용한다면 권력은 우리를 함부로 하지 못하게 된다"는 말로 강의를 마쳤다. 
#강신주 #비트겐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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