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이장희 노래비울릉도는 나의 천국
박건
1973년. 대한민국은 열광했다. <그건 너>,<나야 나>라는 이장희 노래 때문이었다. 일상에서 건져 올린 솔직한 사랑이야기. 단순하고 반복되는 가락, 자유로운 창법, '뿅뿅'대는 독특한 연주가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음반 5만 장 이상이 순식간에 팔려나갔다.
입을 열면 따라 불렀고 거리를 덮었다. 그것은 모두 바로 너 때문이라고 외쳐 댔고 비아냥거렸다. 이토록 목청껏 따라 부른 속사정은 따로 있었다. 당시의 억압된 감정을 자유롭게 외쳐대고 싶은 욕망 탓이었다. 부르는 사람 마음에 따라 그 원수는 바로 '유신헌법'으로 민주주의를 짓밟고, 군사독재권력을 연장하려던 박정희 일당에 대한 저항이자 조롱이었다.
이장희는 대마초 사건으로 유치장에 수감되고 가수 활동에서 은퇴한다. 그후 이장희는 특유의 낙천적 감응과 예지를 바탕으로 사업가로 변신하고 후배양성가로 변모하면서 자신의 재능을 거침없이 펼쳐 나갔다.
1980년 캐나다로 가기 위해 뉴욕을 여행하던 중 그곳의 자유로운 문화에 끌려 정착한다.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1988년에는 한인방송을 위한 < LA 라디오 >를 이끈다. 당시, 흑인폭동이 터지자 비상대책 방송을 주도하면서 어려움에 처한 교민을 돕기도 했다. 그 공로로 미국 대통령의 격려 방문을 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