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7일 경북 청도군 청도읍 신도리에서 열린 새마을운동 성역화사업 준공식에 참석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이날 제막된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동상을 바라보며 활짝 웃고 있다.
연합뉴스
흔히 한국을 두고 경제성장과 민주화에 성공한 나라라고들 합니다. 세계사적으로 볼 때 20세기에 이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은 나라는 유례를 찾기 어렵습니다. 경제성장과 민주화는 특정 정치지도자 한두 사람의 지도력이 아니라 전적으로 한국 민중들이 힘을 합쳐 일궈낸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근자에 튀니지발(發) '재스민혁명'을 시작으로 아프리카와 중동의 독재자들이 권좌에서 쫓겨나는 현실을 우리는 목도한 바 있습니다. 우리는 그같은 독재자를 이미 50년 전에 역사의 무대에서 끌어내린, 민주 역량이 우수한 민족입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일어난 '5·18 민주화운동'은 전두환 신군부의 불법적 권력 찬탈과 폭압통치에 맞서 일어난 것입니다. 멀리는 1919년 일제의 무력통치에 맞서 일어난 3·1만세의거, 가깝게는 1960년 이승만 독재에 항거해 일어난 4·19혁명의 맥을 이은 것으로, 7년 뒤 '6월항쟁'의 밑거름이 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같은 역사성을 객관적으로 인정받아 금년 5월 5·18 관련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정식으로 등재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이 '5·18 민주화운동'의 역사도 새 역사교과서에서 빠지고 말았습니다.
더욱 문제인 것은 해방 후 친일파 청산 노력도 제외됐다는 사실입니다. 기존 집필기준에는 '대한민국은 (해방) 이후 농지개혁을 추진하고 친일파 청산에 노력하였음을 서술한다'고 규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새 집필기준에는 이 부분이 고스란히 빠졌습니다. 이는 해방 후 친일파 청산을 위한 각계의 노력을 외면함은 물론 친일파 문제 자체를 덮어 버리려는 술책이라고 하겠습니다. 장차 역사교과서에서 반민특위, 반민법, 친일파 등의 용어 자체가 사라지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필기준 개발에 참여한 이명희 공주대 교수는 "(친일파 청산 관련 내용은) 교과서에서까지 다룰 정도로 중요한 사안이 아니라고 봤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몇 년 전에 실지로 있었던 일입니다. 한 신문사에서 3·1절을 맞아 중고생들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했더니 '8·15 광복'과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헷갈려 하는 학생들이 절반에 가까웠다고 해서 화제가 됐었습니다. 심지어 '안중근 의사'를 '안과 의사'냐고 묻는 학생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만약 이번 집필기준대로 역사책이 만들어진다면 우리 후세들의 근현대사 무지는 극에 달하게 될 것입니다. 또 어쩌면 뒤틀린 역사관을 갖게 될지도 모릅니다. 백범 김구 선생과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로, 유관순 열사를 '여자 깡패'라고 쓴 어떤 정신병자 같은 작가처럼 말입니다.
교과부 스스로 '편향적 교과서' 만들고 있는 상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