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신, 조석진 I '영조 어진(임금그림)' 비단에 채색 110.5×61.8cm 1900 보물 932호(왼쪽). 이명기 I '오재순 초상' 비단에 채색 152×90cm 18세기말-19세기초 보물 1493호
김형순
이번엔 초상화(인물풍속화)에 대해 알아보자. 우리가 조선시대 초상화를 논할 때 기억해아 할 것은 '터럭 한 올'의 오차도 허용치 않고, 얼굴에 검버섯 하나도 빼놓지 않고 그렸다는 점이다. 이렇게 외면을 극사실적으로 그리면서도 내면에 담긴 혼과 정신까지 담으려 했다. 이를 '정신을 전한다(傳神)'라고 하여 '전신화(傳神畵)'라고 부른다.
조선은 임진왜란 등 많은 전란에도 초상화가 그리도 넘쳐다는 것은 조선왕실이 나라에 공을 세운 신하에게 보상으로 초상화를 그려줬기 때문인지 모른다. 두 벌을 제작해 한 벌은 조정에서 소장하고 한 벌은 종손가에 내려 봉안토록 했다.
왼쪽 왕조의 권위를 상징하는 익선관(翼善冠)을 쓰고 홍룡포 착용한 분은 당시 51세의 영조다. 이 어진의 원본은 1744년 제작되었으나 1900년 10월 14일 경운궁(지금 덕수궁) 선원전 화재로 소실되자 이를 안타까이 여긴 고종은 당시 초상화의 대가인 채용신과 조석진을 시켜 복원시킨 것이다. 고종은 이에 각별히 신경을 썼고 표제도 직접 썼다.
그 오른쪽 작품은 조선 초상화의 제1인자였던 이명기가 그린 65세 때 오재순의 초상이다. 오재순은 정조 때 종일품인 판중추부사에까지 오른 학자출신 관리로 호피의자에 정장관복을 갖추고 근엄하게 앉아있는 모습이다. 당대 초상화의 한 전형을 보여준다.
인간의 이상향을 구현한 '신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