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동서원의 가을
정만진
대구에 처음으로 건립된 서원은 연경서원이다(1564년). 왕건이 지나가다가 선비들의 책 읽는 소리가 너무나 낭랑한 것을 듣고는 '연구'의 '硏'과 '경전'의 '經'이 결합시킨 '연경동'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바로 그 마을에 세워졌다. 하지만 연경서원은 건물도 없어지고 터만 남아 있을 뿐더러, 그 터도 일반인이 찾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곳에 숨은 듯 들어앉아 있다. 따라서 연경서원 터를 외지인들에게 권할 만한 답사지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연경서원은 남아 있지 않지만 대구에는 외지인을 당당하게 초청할 만한 뚜렷한 서원이 한 곳 있다. 도동서원이다. '조선 5현'의 한 사람으로 추앙받았지만 안타깝게도 사화로 죽고 마는 김굉필을 섬기는 서원이다. 대구시 달성군 구지면 낙동강변에 있다.
도동서원은 이미 국가사적 488호에다 보물 350호로 지정받았으므로 자타가 인정하는 공신력도 가졌다. 특히, 김굉필의 외증손자인 정구 당시 안동부사가 심은 수령 400년짜리 은행나무가 그 많은 잎새들을 하나같이 노랗게 물들이는 11월초에 방문하면, 국가사적과 보물이 아닐지라도 그 아름다움에 충분히 취할 수 있으니, 도동서원은 누구에게든 답사를 권할 수 있는 '대구의 자랑'스러운 명소다.
하늘을 쳐다보면, 아니 정면으로 앞만 바라보아도 더 없이 아름다운 이 나무. 그러나 어릴 때 노란 잎새를 주워 책갈피로 쓰던 추억을 떠올리며 땅을 보는 순간, 사화의 처참한 장면이 떠오를 만큼 나무는 몸통 곳곳에 시멘트가 박힌 채 전신을 뒤틀고 있다. 꼭 그렇게 선비들을 처참하게 죽여야만 했을까. 하지만 사람들은 보통 이 은행나무 아래에 서면 문득 그 아름다움에 취해버려, 많은 사람들의 역사속 죽음을 깜빡 잊은 채 그저 서정의 세계를 헤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