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나고야에 도착하는 근로정신대 어린 소녀들,1944년 6월 초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 항공기 제작소 기숙사에 도착하는 광주전남지역 근로정신대 대원들.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 지원회
"어느날 학교에서 동생이 오더니 6학년 때 담임선생인 오가끼 선생이 찾는다는 거예요. 무슨 취직를 알아봐 주려고 그러나, 하고 내심 생각했죠"
김성주(83. 경기도 안양시) 할머니가 동생에게 연락을 받고 일본인 담임선생을 찾아간 것은 1944년 5월께. 전남 순천 남초등학교를 마치고 가사 일을 돕던 중이었다.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징용으로 끌려가 집안에 어른은 할머니 할아버지밖에 없을 때였다.
"일본에 가라는 거예요. 일본에 가면 상급학교도 보내주고, 돈도 벌 수 있다고….""학교 다니고 언니 볼 줄 알았는데..."아직 철모르던 시절 일본인 담임선생의 말만 듣고 나선 게 불행의 시작이었다. 배고프고 가난하던 시절, 학교에 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었다. 목포, 나주, 광주, 순천, 여수에서 뽑힌 150여 명, 대전 충남지역에서 동원된 150여 명 소녀들의 나이는 불과 13~15세. 심지어 양금덕 할머니(83. 광주)는 초등학교 6학년에 올라간 얼마 뒤 미쓰비시로 동원됐다.
여수에서 배를 타고 도착한 곳은 일본의 대표적인 공업도시 나고야. 대표적인 군수업체인 미쓰비시중공업은 당시 군용 정찰기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