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순택 사진작가가 찍은 구럼비 사진이다. 구럼비에 물이 고여있고, 아이들이 평화롭게 물가에서 놀고있다. 그리고 바다너머 멀리 범섬이 내다 보인다. 평화롭던 구럼비는 이제 철조망에 가로막혀 들어갈 수 없게 되었다.
장태욱
주민들에게 구럼비는 조상대대로 물려온 생활의 터전이다. 그런데 해군기지라는 괴물은 구럼비를 강탈하려 했다. 그래서 구럼비를 빼앗으려는 권력집단과 이를 지키려는 주민들 사이에 치열한 싸움이 계속되었다. 해군기지를 놓고 벌어지는 싸움에서 구럼비는 투쟁의 중심에 놓였다. 지난 9월 2일, 경찰이 육지부에서 불러들인 공권력을 투입하여 해안으로 진입하는 농로를 차단한 이후, 주민들은 빼앗긴 구럼비를 되찾기 위해 매일 밤 촛불을 밝히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해군은 폭약을 사용하여 구럼비를 파괴하는 만행을 서슴지 않았다.
이 책은 그 싸움의 현장을 지키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래서 부제가 <제주 강정마을을 지키는 평화유배자들>이다.
평화유배자들의 이름 첫머리에는 문정현 신부가 올랐다. 마을을 위해 기도도 하고, 싸움에도 앞장서지만, 주민들을 위해 해산물을 판매해서 얻은 1300만 원을 마을에 기부한 게 돋보이는 업적이다. 그래서 '길 위의 신부님'에서 '강정상단 대행수님'이라는 새로운 별칭을 얻었다.
30대 청년 김민수도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다. 원래 장래가 촉망되는 애니메이션 작가였는데, 투쟁위원장을 맡고 있는 고권일씨와의 개인적인 인연으로 마을을 찾았다가 그냥 눌러 앉았다. 주소지 이전으로 마을의 주민이 된 것은 물론이고, '강정김씨'라는 새로운 본을 만들어 스스로 시조가 되기도 했다. 아직 미혼이기 때문에 그는 세상에 유일한 강정김씨인 셈이다.
평화유배자의 명단에는 외국인들도 올랐다. 프랑스인 벵자맹 모네와 타이완인 왕에밀리씨다. 벵자맹 모네씨는 직업이 '마음치료사'인데, 보헤미안 기질 때문인지 전 세계를 유랑하며 보내고 있다. 지난 5월에 제주평화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제주를 찾았다가 마을에 텐트를 치고 전 세계로 마을의 상황을 알리는 일을 해왔다.
왕에밀리씨는 동티모르에서 평화봉사활동을 거치고 제주 강정마을을 찾았다. 그는 마을에 평화의 싹을 키우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지었으며, 아침마다 구럼비 바위에서 108배를 올렸다. 이제 그가 평화의 씨를 뿌리던 자리는 해군에 빼앗겨 들어갈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정치인들 가운데서는 민주노동당 현애자 전 국회의원이, 도내 시민단체 활동가로는 고유기 범대위 집행위원장의 이름이 소개되었다. 강정마을이 해군기지 예정지로 결정되기 한 참 전에 화순에서부터 군사기지 반대에 앞장서던 이들이다.
2011년 해군기지 공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것을 보면서, 측은지심에 마을에 눌러앉은 사람들도 있다. '개척자'들의 송강호씨와 생명평화결사 100일 순례단을 이끌고 온 권술룡 단장, '강정당' 당수 김세리씨 등이다. 주민들이 절망에 빠져 있을 때, 희망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애쓴 사람들이다. 송강호씨는 구속되었다가 보석으로 풀려났으며, 현재까지 당국이 그에게 청구한 손해배상액이 수 억 원에 달한다.
해군기지 싸움에서 최전선에서 가장 오래도록 싸워온 이들은 역시 주민들이다. 책에는 강동균 마을회장과 고권일 대책위원장, 백합농사꾼 강희웅씨 등의 이야기가 실렸다. 그리고 해군의 회유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던 법환마을(강정마을과 인접한 마을) 해녀회장 강애심씨가 소개되었다.
그런데 평화유배자들이 이 책에 소개된 사람들만 있겠는가? 최근에 경찰에 긴급하게 체포된 이들의 이름만도 다 나열하기 어렵고, 강동균 마을회장과 연행되어 수감된 김종환씨는 아직도 감옥에 갇혀 있다. 그리고 고유기 집행위원장과 재판을 받은 홍기룡 집행위원장은 며칠 전에야 보석으로 석방되었다.
부록으로 '제주해군기지 무엇이 쟁점인가'와 '강정마을, 4년의 기록' 등이 실렸는데, 해군기지 싸움이 진행돼 온 과정을 이해하는 자료로 매우 유익하다.
이주빈 기자의 서정성 깊은 문체와 노순택 작가의 사진이 잘 어울려 책은 진한 여운과 감동을 남긴다. 누구보다도 보수언론 기자들이나 한나라당 의원들, 참여정부 인사들에게 이 책을 자세히 읽어볼 것을 권한다. 그리고 에필로그에서 구럼비가 "제발 이 죽음의 망나니 짓 그만 멈추라고 말려주세요"라고 전하는 말, 깊이 새겨 듣기를 바란다.
구럼비의 노래를 들어라 - 제주 강정마을을 지키는 평화유배자들
이주빈 글, 노순택 사진,
오마이북,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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